▲미국 '바이블 벨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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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바이블 벨트'가 있다. 보수적인 개신교 신도들이 많이 사는 남동부 지역을 일컫는다. 서부 텍사스, 남부 플로리다, 북부 캔자스, 동부 버지니아에 이르기까지 10여개 주가 이에 속한다. 하지만 그 중 핵심은 단연 텍사스. 인구, 경제력, 교육 여건 등의 강점을 활용해 보수적인 교리의 생산과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댈러스-포트워스 지역에는 보수 신학교로 유명한 댈러스신학교, 남서부침례신학교, 크리스웰대 등이 밀집해 있다. 가장 보수적인 교단으로 알려진 남침례회를 이끄는 댈러스 제일침례교회, 미국에서가장 큰 휴스턴의 레이크우드교회 등 다수의 '메가 처치(mega church)'들이 수백만 명의 '텍산(Texan)'을 이끌고 있다.
이들 신학교와 교회들은 뉴욕, 펜실베이니아 등 미 북동부 지역이나,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의 자유주의 신앙과 뚜렷이 대비되는 신앙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그 무오류성을 믿는 복음주의파(Evangelical Protestantism)로 불린다. 동성애 반대, 낙태 금지(pro-life) 등 사회적 이슈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입장에 확고히 서 있다. 텍사스 출신 부시 대통령의 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만큼 정치력도 막강하다.
이런 텍사스에 신앙과 관련한 커다란 논쟁이 최근 다시 일고 있다. 성경의 천지창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믿고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한 기독교 연구소가 주 고등교육 위원회에 정식 '과학 석사' 학위과정 인가를 요구한 것.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학교 과학 시간에는 진화론을 배워야 했던 많은 텍산들은 이 연구소의 요구를 반기고 있다. 반면, 과학계는 "신화에 불과한 창조론을 과학으로 인정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라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텍사스의 과학 교육은 붕괴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논란은 화씨 100도(섭씨 37.7도)가 넘는 여름 기후보다 더 뜨겁게 텍사스를 달구고 있다.
"사이비 과학에 학위라니... 텍사스는 전 세계 망신거리가 될 것" '창조론 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ICR)'는 지난달 텍사스 고등교육 위원회에 창조론을 바탕으로 한 자신들의 과학 교육 내용에 정식 과학 석사 학위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다. 뒤이어 각계각층의 시민들로 구성된 교육위의 자문 기구는 ICR의 요구를 수용할 것을 교육위에 권고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교육위에는 찬반이 엇갈리는 수백 통의 이메일과 전화가 빗발쳤다. 텍사스 의대 교수이자 1994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프레드 길만 박사는 "암을 정복하기 위해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을 불러 모으며 의학 등 과학 발전에 공을 들이는 텍사스주가 어떻게 우주의 역사가 1만년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연구소에 정식 학위를 내 주려고 하는가"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런 종류의 말도 안 되는 요구가 수용된다면 텍사스는 과학계의 무수한 인재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스티븐 와인버그 텍사스 물리학과 교수도 "(ICR의 요구는) 텍사스의 과학 교육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텍사스는 전 세계의 망신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댈러스의 한 대형 교회 장로이자 20년 이상 성경학교 교사로 일해 왔다고 소개한 텍사스 의대 다니엘 포스터 박사도 비판의 대열에 서기는 마찬가지. 그는 "학교에서는 오직 정통 과학만 가르쳐야지, 사이비 과학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며 "(ICR의 요구가 수용되면) 텍사스는 '반 과학(anti-science)' 주로 낙인 찍혀서 더 이상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초등학교 과학 교사인 잔 윌슨은 "그들이 창조론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는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종교 학위라면 모를까 과학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정의(definition)에 의해서나 판결에 의해서나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창조론은 종교적 믿음이지, 경험적인 증거에 의한 과학이 절대 아니"라며 "이미 미국의 과학 교육은 개발도상국 수준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낙후했는데 이에 더해 과학의 기본조차 모르는 교육자들을 양산할 수 있는 ICR의 요구는 절대 수용돼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