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호굴9층 누각 모습으로 둔황에서 가장 높은 석굴
최종명
펠리오는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 아랍어, 이란어 등 무려 13개 국어를 소화하는 언어 천재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越南) 하노이(河内)의 중문과 교수로 있던 1906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약 2년 동안 중앙아시아 일대를 탐사하는 도중에 둔황에 이르렀다. 장경동에 있던 6천여 권의 문서와 만난 최초의 서양인이었던 셈이다.
그는 이 자료를 토대로 10여 년이 흐른 후 프랑스 파리에서 둔황석굴의 역사적 가치를 소개한 도록(图录)을 발간했다. 모까오굴은 남북으로 1.6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굴이다. 막혀있는 동굴, 그리고 일련번호가 줄줄이 붙여져 있는 굴 속에는 펠리오가 다 가져가지 못한 진귀한 예술이 자연 그대로 남아 있다.
가장 높은 석굴인 9층 높이의 제96석굴(第96窟) 앞에서 한참 역사의 장구함을 느끼며 쉬다가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시내 밍산루(鸣山路)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식당과 호텔이 즐비하다. 길거리에 서양 레스토랑 분위기가 산뜻하다.
존스 인포메이션 카페(John’s Information Café). 이곳은 세계적 여행가이드 북에도 소개된 곳이다. 서양사람들 입맛에 맞는 그런 곳이니 당연하다. 실크로드 노상에 일종의 연쇄점처럼 몇 군데 있어서 여행가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차가 오가는 길에 있어서 약간 소음이 있긴 하지만 야외식당이고 답답하지 않아 좋다. 테이블마다 장미 한 송이씩 자리 잡고 있으니 더 좋다. 치킨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값도 싸고 주인도 친절하다. 편하게 저녁을 먹으면서 쉬었는데, 역시 문제는 현지 시각으로 밤 9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노을이 진다는 것이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보는 노을은 너무 붉어서 기분이 묘하다. 그리고 금세 어둠이 몰려 온다.
다음날도 늦게 점심을 먹고 밍사산(鸣沙山)으로 갔다. 둔황(敦煌)에서 남쪽으로 불과 5킬로미터 떨어졌으니 아주 가깝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20분이면 도착한다.
밍사산은 사람들이 사막 모래를 밟으며 지나가면 ‘모래가 흐르는 소리’를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만큼 산도 꽤 높다. 동서 40킬로미터, 남북 20킬로미터에 이르는 사막에 우뚝 솟은 산이다. 해발은 1650미터 정도이나 가까이 가서 보면 수십 미터에 이르는 등산로가 보이기도 한다. 너무 더워 감히 오를 생각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