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바쁜 이명박 당선인에게 필요한 것은

[주장] '구슬도 꿰어야 보배'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등록 2008.01.29 17:41수정 2008.01.2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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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한 그릇도 잘 먹으면 약이요,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급히 먹는 떡은 언제든 체하기 마련이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지 않은가. 성급함이 몰고 올 결과가 어떤 건지를 경계하는 옛말은 하나같이 천번 만번 곱씹어 볼 일이다.

 

아무리 쉬운 일도 급하게 하면 일을 망치는 법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갖가지 구슬을 만들어내는 데만 바쁘다 보면 정작 만들고자 했던 구슬목거리는 구경도 못할 수 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도 두 말할 나위 없이 정성껏 그리고 순리대로 해야 사고는 막고 진정한 성공을 앞당길 수 있다는 중요한 옛 가르침이다.

 

한나라당도 그렇고 이명박 당선인도 그렇고 다들 예쁜 구슬 만들기에만 바쁘고 앞에 놓인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키기에만 관심을 쏟는 듯 하다. 돌다리를 두드리기는커녕 다리 한 가운데 허공을 뛰어넘을 태세다.

 

예정된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만 바쁘다

 

28일 한승수 유엔기후변화특사를 차기 정부 첫 총리로 내정한 이명박 당선인은 지금 연일 새 정부조직개편안 원안 통과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제 막 국회 심의가 시작되었는데 말이다. 그러다 자기들 딴에는 애써 만들었을 ‘구슬’들이 우수수 떨어져 사방으로 나뒹굴지 모를 일이다.

 

사진을 찍을 때 위에서 찍는 것과 아래서 찍는 것은 그 느낌이 무척 다르다. 위에서 찍으면 대개 사물이 작아 보인다. 아래서 보면 반대로 모든 게 길쭉길쭉하게 보이며 때로는 거대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일이 그만큼 달라진다는 말이다. 실생활에서 우리가 항상 경험하는 살아있는 지혜이다.

 

그런데, 옛 가르침 하나 들어본 일이 없다는 듯 그리고 항상 위에만 있었던 듯 행동하는 차기 정부 관계자들을 보자니 한소 리 또 안할 수가 없다. 어찌 그리 서두를까. 자기들에게는 10년 만에 얻은 옥동자 같을 새 정부 밑그림을 그리 험악하게 그려놓고 본인들도 제대로 알아볼까 걱정스럽다.

 

내 얘기를 한 가지 하련다. 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너무 여유롭게 보일 정도로 일을 천천히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필요한 과정과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 내내 목표 자체는 사실상 멀찍이 놓고 시시때때로 확인만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준비한 만큼 충실하게 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한 자료를 모아놓고 두서없이 말을 쏟아내거나 허술한 ‘밑그림’을 갖고 일을 추진하려 한다면, 그건 이미 절반 가까이 실패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지금 이 당선인 측과 한나라당 일하는 모양새가 딱 그렇다.

 

벌써부터 반대 여론이 하늘을 찌르는 한반도운하 정책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영어교육 정책 역시 급히 서두르는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하루아침에 벼락 치듯 해결할 일이 아닌 영어교육을 무슨 작업공정 순서에 꿰어 맞추듯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는 식으로 일방적 전달사항만 계속 쏟아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제나 저제나 예의 있고 사리 판단 잘하고 주변 상황(국제관계를 포함하여)을 면밀히 고려하는, 믿고 나라를 맡길 만한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 당선인이 정해졌다는 사실 빼놓고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안정적인 것도 없다.

 

당선인은 늘 ‘다 잘 될 것이다’란 식으로 현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한나라당은 연일 총선공천에다 새 정부조직개편안 조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당내에서는 물론 현 여당과 수 싸움을 하려니 대선에서 승리한 기쁨이 지금 거의 사라지고 없다. 바싹 긴장한 채 싸움에 나설 채비를 하는 전투적 모양새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당내 의견 조율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조직개편안 원안을 무조건 그대로 통과시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역시 그만 하라. 차라리 하루에 스물 다섯 시간을 일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 국회 회기 내내 국민을 상대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국회에 조심스런 의견을 표명하며 현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지닌 법적 지위와 기능 그리고 그 힘을 인정하라.

 

결국 이 당선인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항상 겸손한 자세를 지니라는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다가오는 자에게 아무도 쉽사리 결사반대를 하기란 쉽지 않을 터. 평범하고도 중요한 옛 가르침을 조금만 신경 써도 이토록 국민적 우려가 크진 않을 게다.

2008.01.29 17:41ⓒ 2008 OhmyNews
#이명박 #한나라당 #17대 국회 #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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