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 사고로 피해를 입은 한 어민이 삼성을 규탄하는 머리띠를 두른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서울역 광장에 선 어민들의 눈엔 물기가 퍼졌다. 그리곤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는 "어떻게 사느냐"며 아직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해산물을 광장 한 복판에 쏟아 부었고, 다른 누군가는 삼성 로고가 선명한 가전제품들을 망치로 내리쳤다.
이윽고 삼성 본관으로 몰려간 어민들은 "삼성 타도"를 외치며 삼성이 죽인 '검은' 수산물을 내던졌다. 어민들이 30분 넘게 "보상하라"고 외친 끝에 삼성 관계자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끝내 '보상'이란 말을 입에 담진 않았다.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과 삼성 본관 앞의 모습이었다. 지난달 7일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로 삶터를 잃어버린 태안·서산 등지의 어민 3000여명이 상경했다. '조속한 특별법 제정, 삼성무한책임 촉구대회'를 열기 위해서였다. 자살한 어민들의 영정도 함께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정부·삼성·정치권은 정신 차리나"이날 촉구대회는 태안유류피해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오후 1시 서울역 광장에서 시작됐다. 광장에는 삼성중공업을 향해 ▲ 완전 보상 ▲ 완전 복구 ▲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3000개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였다.
광장 한편에 걸린 "우리가 끝이면, 너희도 끝이다"는 내용의 거대한 펼침막은 어민들의 심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어민들은 '사람 죽인 삼성그룹 참회하라 배상하라', '무한책임 무한보상 삼성그룹 약속하라' 등의 피켓을 들고 "보상"을 힘껏 외쳤다.
대회의 첫머리는 정치인들의 차지였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삼성은 불법 비자금으로 산 미술품을 팔아 어민들의 피해를 즉각 보상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국정조사를 통해 쌍방과실 결론을 낸 검찰 수사를 무효화하고, 삼성이 무한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합민주신당, 한나라당, 국민중심당에서도 나와 "특별법을 제정하고, 즉각적인 선보상을 하겠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에 박수치는 어민들도 있었지만, "정치발언 하지말라"며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어민도 많았다.
전완수 대책위 사무국장은 "정치권에 큰 실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전 쌍방과실이라는 검찰 발표를 두고 유감 표명이나 수사를 촉구하는 정당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에 앞서, 이자·학자금 감면부터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전 사무국장은 이어 "긴급 생계지원금 560억원으로는 피해 가구당 100만원도 안 된다"면서 "정치권·정부·삼성은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밝혔다. 이어 "얼마나 더 죽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고 외쳤다.
어민들의 망치에 부서진 '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