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폭포.박연폭포가 얼어 붙어 있습니다.
이정근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황진이좋다. 헛물켜지 말라는 얘기인 것 같은데 난 네가 없을까봐 조바심쳤다. 있어주어 고맙다. 네 말처럼 쉬어 갈테다.
황진이의 시를 새겨놓았다는 용 바위에 앉으니 절벽에 걸린 폭포가 일품이다. 과연 절경이다. 팔도의 한량들이 무릎을 칠 만하다.
한송(漢松)이 만공창(滿空蒼)하니 말동무나 되어다오. 한양과 송도의 하늘이 충만하게 열렸으니 한담이나 나누어 보자.
“박연폭포와 서경덕 그리고 기생 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어느 것이 으뜸이라 생각하오?”
“그야 당연히 황진이죠.”
거침없는 답변이다. 공주병에 걸려도 단단히 걸렸나 보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생각해 보시라요. 박연폭포는 그냥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였다 그 말씀이야요. 여기에서 내가 사내들을 후리면서 좀 놀았더니만 절경으로 알려졌고. 서경덕 역시 그래요. 화담은 조선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서생이었다 이 말씀이야요. 이러한 서생이 나하고의 염문설 때문에 전국구 유명인사가 됐잖아요? 그러니 내가 없으면 박연폭포는 맹물이고 서경덕은 시체라요. 그러니 내가 으뜸이지요.”
발칙하다. 명월이라는 기명에 걸맞게 당차고 황당하다.
“그렇다면 지족선사와 서경덕 중에 누가 진정한 사나이우?”
하도 기가차서 꼬면서 물었다.
“지족선사지요.”
의외였다. 황진이가 흠모하고 존경했던 인물은 서경덕이지 않은가.
“궁금한데요. 얘기 좀 해줄 수 있나요?”
“다 지나간 얘긴데 무슨 얘기를요?”
꽁무니를 뺀다. 두 눈을 지긋이 감은 황진이가 먼 하늘을 바라본다. 눈을 감았으니 천마산에 걸친 흰 구름은 보이지 않고 그 때 그 시절이 생각났을 터.
“그 때 몇 살이었어요?”
“누구? 나??”
“아니오, 지족선사.”
“서른다섯이오.”
“진이는?
“스무울... 아니 이 사람이 지금 유도질문하고 있잖아?”
말끝을 흐려버리고 통통 튄다. 뽀루퉁한 모습이 넘 귀엽다.
“그렇담 지금 몇 살이에요?”
“갈수록 가관일세. 숙녀 나이를 묻는 것은 결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물어?”
490년 전 사람이면서 숙녀라니 당혹스럽다. 할머니도 몇 바퀴 돌아간 호호 할머니 일텐데 웃긴다.
“그게 아니고요. 생몰년대가 미상이라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서요.”
“연산군을 몰아내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던 박원종과 성희안이 세도를 부리던 어지러운 세상에 별 볼일 없는 진사가 외도하여 태어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면 됐지. 뭘 더 알려고 그래?”
“처음부터 ‘지족선사를 유혹하겠다’ 라고 작심하고 찾아 갔어요?”
“그런 건 아니었지만 만나 보니까 뽕 가드라고...”
“왜요?”
“왜긴 왜야? 잘 생겨서 그렇지.”
잘 생긴 모습은 얘나 지금이나 여자들을 꾸뻑가게 하는 무기였는지? 황진이의 연막 전술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연속 3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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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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