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 폐지, 이유나 들어보자'라는 글을 올렸던 필자의 블로그. 찬반의견이 70개 가량 올라왔다.(http://blog.ohmynews.com/solneum/)
이봉렬
결론부터 말하자. 그 의견들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내 의견은 여성부는 존속해야 하며 권한과 책임을 확대하는 쪽으로 더 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이 내놓은 이유들은 여성부를 폐지할 아무런 근거도 되지 못했다.
우선 누리꾼들이 여성부 폐지의 이유로 든 것들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 해보자.
[폐지주장①- '이대 페미' 위한 부처] 재경부는 '서울대 남성' 위한 부처? 이명박 당선인은 여성부 폐지를 이야기 하며 '여성부가 여성 권력 주장하는 사람들의 부서'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같은 맥락에서 여성부가 이화여대 출신 여성들의 자리 마련을 위한 부서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여성 권력'이란 무슨 말인가? 이제껏 모든 권력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던 이들에게는 여성의 중앙부처 진출이 대단한 권력이라도 내준 것처럼 여겨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여성 권력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총리가 탄생한 것이 불과 두 해 전이다. 지금 현재 여성 장관의 수는 단 한 명, 여성부 장관뿐이다. 298명의 국회의원 중 여성 국회의원은 42명으로 13%이며, 이는 세계 81위 수준이다(2007, 세계의원연맹 자료). 또한 전체 공무원의 22.8%가 여성공무원이지만 5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의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2006, 중앙인사위원회 자료)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반부패지수 순위에서 늘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의 경우 여성국회의원의 비율이 40%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은 반부패지수 43위다. 여성의 권력이 강해질수록 부패지수는 낮아진다. 이명박 당선인의 말대로 여성부가 여성 권력을 위한 부서라면 이는 폐지가 아니라 존속의 이유가 된다.
여성부를 두고 '이대 페미'들의 부서라고 하는 것도 부당하다. 이제까지 여성부 장관은 모두 세명이며, 모두가 이화여대 출신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게 왜 문제인가?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장관도 하고 권력도 누린다면 문제지만, 여성운동에 큰 역할을 했던 이들 가운데 이화여대 출신이 많은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출신 학교를 가지고 시비를 건다면 지난 10년 간 10명의 수장이 하나같이 서울대 출신으로만 채워진 재정경제부에는 왜 시비 걸지 않는가.
[폐지주장② '군 가산점 폐지한 부처'] 사실관계부터 바로 알라여성부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군 가산점 폐지에 대한 것이다. 군 가산점 폐지로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야 하는 '남자들'이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이는 여성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건 사실관계부터가 다르다. 군가산점 제도가 없어진 것은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의 결과이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여성부가 아니라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가 군가산점제에 의해 탈락된 장애인과 5명의 여성이었다. 군 가산점문제를 여성부 폐지의 이유로 내놓는 것은 잘못이다.
게다가 군가산점은 여성에게만 불리한 제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군대에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불리하다. 장애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군대에서의 2년은 군 복무 기간 중에 보상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땐 군대를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 이들과 구분 될 수 있는 보상이 필요한 것이다.
군대 2년이 사회생활에 얼마나 불리한 조건인 줄 아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 보육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우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얼마나 불리한 조건인 줄 아느냐고 되묻고 싶다.
[폐지주장③- 성매매 특별법, 남성을 범죄자 취급] 범죄라는 걸 일깨워줬다여성부가 추진한 성매매 특별법이 성매매는 줄이지 못하고 도리어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성매매 하는 남자들이 법적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 여성부 폐지의 이유라는 주장도 상당했다. 거기에 여성부의 각종 성매매 금지 홍보 활동이 남성들 입장에서 상당히 불쾌했다는 반응도 많았다.
우선 성매매 특별법이 아니더라도 성매매는 불법이었으며, 단속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단속에 걸리면 성매수자는 범죄자 신분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에도 성매매가 줄지 않은 것은 여성부의 적은 인력으로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강력한 단속이 아니라 의식계몽 뿐이었기 때문이다.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 단속을 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으리라.
회식 후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돈을 준다는 식의 몇 가지 기술적 실수를 가지고 여성부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너무 과하다. 그렇게 따지면 일기예보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기상청도 폐지하고, 청장이 돈을 받아 구속된 국세청도 폐지하고, 총기 탈취 사고가 발생한 국방부도 폐지해야 마땅하다.
성매매 비용 비싸게 만들었다고, 성매매 하는 남성들 수치심 느끼게 했다고 여성부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남성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여성부를 성매매가 범죄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 하나만으로도 여성부는 존재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