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부동산 광풍을 잠재운 지 1년여 된 2007년 말 현재 상황은 마치 폭풍 전야 같다.
부동산 값은 잡혔다고 하지만 거래는 동결 직전이고, 대출 금리는 가파르게 오르고, 지방의 아파트 분양은 얼어붙고,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한다. 아파트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할 것 없이 분양가 상한제와 원가공개 본격 시행을 앞두고 눈치 보고, 부동산 규제완화를 대폭 해줄 것 같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눈치 본다.
종합부동산세가 집행된 지 2년 째, 원성 자자한 양도세 현실화가 시행된 지 3년 째, 새 정부가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거래를 숨죽이게 만든다. 재개발과 재건축 용적률 올려주고 임대주택 비율이나 중소형 아파트 비율 등 개발이익 환수 장치도 완화된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어서 또 숨죽이고 기다린다. 혹시 전매 규제 완화도 풀어주지 않을까, 대출 규제도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작용한다.
과연 부동산 정책은 시계추처럼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가?
부동산 문제냐 주택 문제냐
지난 5년 동안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문제는 단연 부동산 문제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를 괴롭혀왔고 지금도 또 앞으로도 여전히 따라다닐 문제가 주택 문제다.
부동산 문제 없는 나라, 주택 문제 없는 나라에서 살 수는 없을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땅값과 아파트 값 절대 못 따라잡고, 돈 놓고 돈 먹는 부동산 투기자들이 쉽게 돈 버는 사회에서 어디 열심히 일하고 싶은가.
기업인들이 어디 새로운 사업 개발하겠는가. 그 어렵게 공장 운영하고 그 어렵게 회사 운영하고 싶겠는가. 어디 가게 하나라도 열심히 하고 싶겠는가. 부부 함께 열심히 10년을 저축해도 제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면 도대체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겠는가.
부동산 문제, 주택 문제는 사회 근간에 관련된 문제다. 국민 사기 문제, 국민의 희망 문제, 경제 활동 문제, 산업 발전 문제, 사회 안정의 문제다.
부동산 문제와 주택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절대적이다.
21세기 초세계자본주의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저금리와 투자자본의 흐름에 따라 전 세계가 부동산 광풍에 휘말렸고 선진사회에서도 부동산 값 앙등과 투기 광풍이 몰아쳤지만, 그것이 곧 주택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 문제가 불거지면 곧 주택 문제가 심각해지고, 주택 문제가 불거지면 곧 부동산 문제가 터져버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엄연하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묘책은 없는가. 국민으로서는 당장 천하의 묘책이 나와서 모든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실제 그런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동산과 주택 문제는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리 정책과 투자 환경과 경기 순환 등 여러 사안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건드린다고 풀기 어렵다. 부동산과 주택 문제는 그 사회 특유의 구조적 문제와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에 바로 선진사회와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시점에 짚어야 할 기본을 짚어보자. 혹시 정상궤도로 갈 수 있는 단초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공통적인 상황 인식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동산 문제, 주택 문제 해결에 대한 조급증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냉철한 상황 인식은 필요하다.
우리 상황 열두 가지, 선진사회와 너무 다르다
[① 부동산 불패 심리] 쉽게 끓고 무섭게 식는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끈질기다. 오를 땐 양은 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르고 내릴 땐 무섭게 빠른 속도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부동산 심리 문제는 다른 어떤 실체보다도 우리의 부동산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 국민의 부동산 불패 환상은 중증이다. 부동산에 돈을 잠가 놓는 관성은 다른 유동 투자방식이 더욱 활성화되고 보편화될 때가 되어서야 풀릴 터인데, 주식시장 성장 등 현재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시간은 걸린다.
[② 주택 보급률] 개미처럼 지어서 가까스로 100%
지난 30년 동안 신도시·재개발·택지개발 등으로 개미처럼 지어서 가까스로 100%를 넘겼지만(2006년 기준 106%) 아직도 이른바 안정적 주택시장을 형성할 수 있는 110%대 보급률은 2012년경이 되어야 한다. 일본은 1970년대에 이미 110%를 넘었다. '닭장'이라 불릴 정도로 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서 초라한 중소주택이라도 하더라도 그에 집중했기 때문에 시장은 일찍 안정된 편이어서 우리처럼 중대형 민영 아파트가 대세였던 것과 대비된다.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긴 우리보다 더한 1980년대를 겪었지만, 일본의 부동산 거품 문제는 주로 상업시설에 몰아쳤고 부동산 문제가 곧 주택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는 최근 부동산 활성화가 두드러지고, 중대형 고급아파트 개발 붐이 일고 있지만, 여전히 실수요자 중심이 대세인지라 우리처럼 급등 문제는 덜 생기고, 일부 지역이나 부분 시장에 국한될 뿐이다.
[③ 지역별 주택 보급률 차] 120% 호남과 90% 수도권
지역별로 주택 보급률이 너무 차이난다. 지방 도시들은 대개 110%대에 육박하고 이미 120%까지 된 도시도 있지만(인구 정체·감소 지역인 호남 도시들), 서울과 수도권은 아직 90%대에 불과하다. 지역 맞춤형의 주택정책이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에 아파트 대량 공급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고. 그만큼 이제 더욱 정교한 주택정책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대응은 아주 초보적이다.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 고루 퍼져 산다면 주택 문제, 부동산 문제도 훨씬 줄어들련만 왜 서울과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8%가 모여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과연 지역균형발전정책의 기조가 인구 분산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④ 세대수 급증] 1인 가구 늘어나는데 중대형 아파트 지어야 하나
하지만 이제 통상적인 주택 보급률만 가지고 주택 시장 안정을 논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세대수 증가 때문이다. 4인 가구는 줄고 3인 가구, 2인 가구도 많아졌고, 1인 가구 역시 급증하고 있다. 최근 신도시의 세대 당 가족원 수 계획기준은 2.3~2.7인에 불과하다.
최근 건설교통부는 '인구 천명당 주택수' 개념을 도입하였는데, 우리나라는 2005년 기준 전국 평균 280이다. 선진사회 경우, 프랑스 490, 미국 425, 영국 417, 네덜란드 415 등 400~450 수준이다. 정부는 주택종합계획을 통해 2012년 인구 천명 당 주택 수 목표치를 320으로 삼고 있다.
이런 통계를 보면 주택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수치가 자칫 신도시나 아파트 개발의 당위성 주장으로 바로 해석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특히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중대형 아파트 집중 개발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문제도 같이 제기될 수 있다. 특히 1인 가구를 위한 주택은 신도시보다 도심에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