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은 강에서 시작됐다. 전곡리·미사리·암사동 등의 유적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역시 강을 따라 선사시대(신석기·구석기·청동기문화) 역사와 문화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강을 훼손하는 것은 곧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일본의 어느 학자는 일본에 없는 구석기 유물을 몰래 묻어놓고 발굴을 했다가 그 후 거짓이 탄로가 나 국제적 망신을 샀다. 중국 또한 티베트와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하는 서역공정과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찰, 성, 서원, 석탑, 배 유적... 그대로 묻을 순 없다
운하를 추진하는 것은 중국과 일본이 하는 역사왜곡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자신의 역사유적을 운하 건설로 모두 훼손하는 것은 역사왜곡보다 더 무서운 역사 문화 말살인 것이다.
2005년도에 발굴된 경남 창녕 비봉리 신석기시대 배 유적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배 유적이다. 기원전 6000~8000년의 것으로 추정하는데, 곧 교과서에 등재될 예정이다. 하지만 운하가 추진된다면 배가 발견된 세계적인 유적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이렇듯 강 주변에는 우리가 아직도 조사하고 보존해야할 문화재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다.
역사시대(삼국·남북국·고려·조선)의 강은 현재의 도로처럼 중요한 물류 운송로와 주요 교통로로써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구려·백제·신라는 한강을 비롯한 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국가의 운명을 걸기도 했다. 따라서 주요 교통로인 전략적 요충지를 지키기 위해 성곽과 진지(성곽 -고구려 보루성, 장미산성, 온달산성 등)를 구축했다.
또한 지리적인 이점으로 풍납토성과 같은 한 국가의 수도가 존재할 수 있었다. 수많은 무덤(고분군)은 현재도 존재하는데, 여기에는 많은 보물들이 있다. 고대 국가에서는 매장을 할 때 당시 최고의 보물을 같이 매장했기 때문이다. 또 물류와 전략적 요충지인 주요 거점에는 사찰(신륵사, 충주 탑평리 7층 석탑, 원주 법천사 등)이 존재했다.
고려와 조선에는 물류 운송을 하며 강폭을 넓히면서 토목공사도 했다. 대구의 도동서원과 같은 교육 기능을 하는 서원도 강 옆에 있고 각종 나루터에는 서민의 채취가 묻어 있는 민속 문화유산도 존재한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유적지를 통해 과거의 역사와 건축기법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강 주변에는 고고학·미술사학·민속학·지질구조학·동식물학·건축학적인 문화유산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한다.
강 주변의 수많은 문화제는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