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세종대왕 왕자태실에는 없었던 걸 여기서 보네!
명봉사 마당 위,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무량수전 곁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빗돌 두 개가 나란히 서있어요.
“아하! 이거구나. 자기야! 빨리 와봐! 이게 문종대왕 태실비야.”
무량수전 화려한 단청 문양과 공포를 부지런히 찍고 있는 남편을 불렀어요. 앞에는 ‘문종대왕태실비’라고 적혀있고, 뒤에는 ‘숭정기원후일백팔십을묘’라 새겨져있어요. 사실 나는 이 비문에 새긴 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조선 5대 임금인 문종대왕의 태실비를 1735년(영조11년)에 세웠다는 거라고 안내판이 따로 있어 알았어요.
얼마 앞서 성주에 있는 ‘세종대왕 왕자태실’에 갔을 때, 세종대왕의 아들인 왕자들의 태실이 그곳에 모셔져 있어 모두 봤는데, 문종대왕의 태실은 없었거든요. 그랬는데, 이곳 예천까지 와서 만났네요. 이 태실비는 일제강점기 때에 명봉사 법당 뒤 산봉우리에 묻혀있던 걸 찾아내어 여기에 다시 세웠다고 해요.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태실은 없고 태실비만 남아있었어요.
지난번에 성주 태실에 갔을 때, 세종대왕의 왕자들이 잘 되기를 바라며 좋은 터에다가 따로 모셔두었다는 걸 보고난 뒤라 그런지 한낱 빗돌이지만 퍽 반갑고 정겨웠답니다.
사도세자 태실 비문을 깎아내고 절집 사적비문을 새겼다고?
문종대왕 태실비(경북유형문화재 187호)와 나란히 있는 빗돌, 바로 ‘명봉사사적비’예요. 그런데 희한하게 태실비와도 모양이 매우 비슷하게 생겼어요. 아니, 어찌 보면 이 사적비가 더 오래된 듯 보였어요. 처음엔 그저 이 절집을 세운 이야기와 역사가 담겨 있겠거니 하면서 봤답니다. 하기야 앞뒤로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자를 모조리 한문으로만 적어두었으니, 나 같은 사람은 알아보려고 해도 알 수 없지요. 또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나중에 예천에 다녀와서 자료를 찾아보고 알았는데, 이 ‘명봉사사적비’에는 아주 남다른 얘깃거리가 있었답니다. 바로 이 사적비는 그 옛날 조선후기 영조 임금의 아들, 그러니까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죽은 사도세자의 태실비였다고 해요.
‘어쩐지 문종대왕태실비와 그 모양과 생김새가 매우 닮았다했더니, 이것도 바로 태실비였구나!’
이 얘기도 일제강점기 때 일인데요. 그때 명봉사에 주지로 있던 스님이 사도세자의 태실비 비면을 깎아내고 거기다가 명봉사 사적을 기념하는 비문을 새겨 넣었다고 하네요. 이때, 이 일 때문에 크게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답니다. 나라 잃은 설움도 크고 깊은데, 왕실과 관련된 유적을 망가뜨리다니요? 어쩌면 일제가 저지른 몹쓸 짓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어요.
우리가 절집에 자주 찾다보니, 처음 절집을 세우고 그 뒤 이런저런 모진 일을 겪으면서 불타버리고 무너진 걸 또 다시 짓거나 새로 고쳐 세웠다는 기록을 참 많이 봐왔어요. 그 때마다 그 끄트머리에는 늘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망가진 것들이 많았어요. 글쎄, 내가 일제강점기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우리나라 소중한 문화재마다 흠집을 낸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는 기록을 보면, 참 화가 많이 났지요.
그때 명봉사 주지스님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니면 어떤 지시를 받아 이와 같은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문화유적을 망가뜨렸다는 건 매우 안타깝고 딱한 일이랍니다. 우리가 명봉사에 갔을 때에는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그저 ‘문종대왕태실비’를 본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쁜 마음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실을 알고 나니 매우 씁쓸했답니다.
명봉사를 벗어나와 이제는 그 곁으로 난 산길(임도)을 따라 올라갑니다. 이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고려시대 절집이고 꽤 크고 이름난 ‘소백산 용문사’가 나오지요. 여기 산길도 자전거를 타는 재미가 꽤 남달라요. 며칠 앞서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아직 산자락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어서 난생 처음으로 하얀 눈길에서 자전거를 타봤답니다. 더구나 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라 한쪽은 탁 트여있어요. 양쪽으로 꽉 막혀있는 다른 산길에 견주어보면 경치가 매우 멋스러워요. 발아래 저 멀리 성냥갑만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도 무척 정겹지요.
자! 이제는 용문사까지 냅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거기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2008.01.19 19:19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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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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