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석동 꼭대기 마을에서 닭을 산에 풀어놓고 키운다.
김대홍
더욱 놀라웠던 장면은 어디서 닭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가봤다니 야산에서 닭이 놀고 있었다는 점이다. 닭집은 있었지만 방목 상태였다.
시골에 있는 아는 사람 집이나 친척 집에 가봐도 닭장에 넣어서 키운다. 그런데 방목이라니. 닭들은 아주 건강해 보였다. 눈 앞에서 '푸드득' 거리며 날기도 했다.
방목해서 키운 닭의 알은 값을 더 쳐주기도 한다는데, 이 곳에서 난 달걀을 판다면 아주 톡톡히 받아야 할 일이다.
이렇게 닭이 제 멋대로 뛰어놀 수 있는 곳도 이 곳이 담 낮고 층이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아파트가 들어오면 이런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염없이 풍경들을 쳐다보니 있으니 동네 주민 한 분이 말을 건넨다.
"내년이면 다 없어질 곳이니 열심히 사진 찍으세요."34년 터줏대감의 걱정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디 간대요?"흑석동에서 꼭 기억해야 할 사람은 심훈이다.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저자로 유명한 심훈은 1910년 흑석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영화인이었던 심훈은 삶이 영화였던 사람이다.
1917년 왕족인 이해영과 결혼, 1919년 3·1운동으로 투옥된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퇴학, 1920년 중국 망명, 1923년 귀국해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내세운 염군사 연극부 활동, 1924년 부인과 이혼, 1925년 예술가동맹(KAPF)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듬해 탈퇴, 1926년 동아일보사에서 해직, 1927년 영화 <먼동이 틀 때> 연출 단성사 개봉, 1928년 <조선일보> 입사, 1930년 안정옥과 재혼, 1935년 장편 <상록수>가 <동아일보> 발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 당선….
재인박명(才人薄命)이라고 했던가. 심훈의 삶은 길지 못했다. 1936년 9월 16일 3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정신없이 구경하던 도중 함께 다니던 정래가 목이 마르다고 한다. 그래 근처 이름없는 가게에 들어갔다. 우연찮게 들어간 가게는 조용했다. 주인에게 말을 붙였더니 흑석동 역사가 줄줄줄 나온다.
여기에 산 지 딱 34년째란다. 올해 나이 61세. 충북 청양에 살다가 올라왔으니 서울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주인 이름은 최연자씨. 이 곳이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벌써 보상을 받고 집과 땅을 넘겼다. 적지 않은 돈이다. 헌데 두 가지가 걱정이다.
"이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살아요. 그 분들은 어디 간대요? 집을 거저 준다고 해도, 아파트라면 한 달에 30만원씩 관리비를 내야 하는데, 그 돈을 어떻게 내요. 젊은 사람은 좋겠죠.(젊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파트를 짓고, 나이 드신 분들 사는 곳엔 주택 개량 정도 해서 살게 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죠. 그게 좋죠. 아파트가 들어와서 동네가 번잡스러워지면 그 분들이 잘 살 수 있을까요. 저도 걱정이에요. 보세요. 뒤에는 산이고 앞엔 한강이 이렇게 잘 보이는 땅…. 서울에 또 있어요?(한남동 정도가 해당되겠죠.) 요즘 양수리 쪽(한강 상류 쪽)을 알아보고 왔는데, 우리 남편이 떠나기 싫다고 하네요."최연자씨는 동네 소식을 다 꿰고 있었다. 김한길씨네 집은 어디 가면 볼 수 있고, 또 조선일보 사주인 방우영씨 집은 어디 있으며, 국립현충으로 넘어가는 산길 입구가 어디인지 등등 흥미로운 정보를 줄줄 꿰었다. 전 프로권투 챔피언 박종팔씨가 살았던 이야기 등 마을 사랑방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아마 탤런트 송일국이 사는 곳을 물었어도 알려주었으리라.
배산임수의 명품경치는 모두다 나눠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