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고개 만리시장에 있는 성우이용원
김대홍
중림동은 아니지만 만리동고개 근처엔 아주 오래된 명물이 한 곳 있다. 용산구 청파1동 만리시장에 있는 성우이용원이 그 곳이다. 1927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80년이 됐다. 건물은 80년 전 그대로다.
슬레이트 지붕과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대문,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창틀은 세트장같은 느낌마저 든다. 설마 아직까지 이발을 할까 싶은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걱정은 싹 사라지게 된다.
훈훈한 기운이 실내를 감싸고 있다. 머리에 물을 뿌릴 때 쓰는 물뿌리개, 물을 데우는 난로, 언제 만들어졌는지 가늠하기 힘든 선풍기, '지직'거리며 돌아갈 것 같은 레코드 턴테이블 등 실내는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주인은 이남열씨(59). 외할아버지인 서재덕씨(작고), 아버지인 이성순씨(작고)에 이어 18세부터 가위질을 시작했다. 벌써 41년째다. 이발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섬세한 손놀림과 규칙적으로 들리는 가위질 소리가 금세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한 구석에 빈 라덴 그림이 보여 물었더니 직접 그린 그림이란다. 그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씨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렸을 뿐 빈 라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웃었다. 손 기술이 좋으면 그림에도 재주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블루클럽'처럼 값싸고 빨리 깎아주는 체인형 이발소가 대세를 이룬 요즘, 오로지 가위로만 머리를 깎는 이발소는 점점 퇴물이 되고 있다. 장인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남열씨는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이발사는 이미 씨가 말랐다"며 "아마 내 이후로 대가 끊길 것 같다"고 말했다. 기본 기술만 익히는데 7년 이상 걸리는데, 그 일을 누가 하겠냐면서. 요즘은 반년만 익히면 독립하려 한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나 빨리 만들고 빨리 버리는 인스턴트 사회. 빠른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성우이용원'에 가 볼 일이다. 단 월요일은 피할 것. 대청소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바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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