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부럽다 부러워!"

책 속의 노년(92) : <나이 먹는 즐거움>

등록 2008.01.15 18:00수정 2008.01.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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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먹는 즐거움>
<나이 먹는 즐거움>한겨레 출판
<나이 먹는 즐거움> ⓒ 한겨레 출판

28년 동안 전문직 여성으로 직장 생활, 대학생과 고등학생 남매, 주말부부이긴 하지만 '아직' 현직에 있는 남편, 친정 5남매 간의 화목은 물론 시집 다섯 시누이와의 우애, 건강하고 명랑한 친정어머니와 너그러운 시어머니….

 

갱년기의 우울 모드를 스스로 명랑 모드로 바꿔 <나이 먹는 즐거움>을 한껏 높은 목소리로 외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갈수록 내 마음속에는 솔직히 부러움이 차고 넘쳤다. 5년 후 지금의 저자 나이에 이르렀을 때의 내 모습은 물론이고, 지금의 나 사는 처지와는 엄청 다른 그의 생활에서 느껴지는 열등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박어진의 좌충우돌 갱년기 보고서'라는 부제대로 갱년기라는 인생의 한 전환점을 넘어서면서 생각하고 느낀 모든 것을 어찌나 재기 발랄하게 적어놓았는지, 50대 아줌마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젊은 사람들만 톡톡 튀는 글을 쓰라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지만, 아무튼 쉽고 빠르게 읽힌다. 

 

스스로의 경험과 체험에서 우러난 갱년기 보고서는 나이 먹는 기술, 혼자 놀기의 즐거움,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 가족 관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이 땅에서 50대 중반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가볍고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그간 겪었을 육아 전쟁과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노력, 가족 간의 우애와 화목을 위해 나름대로 기울였을 섬세한 배려들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 열매를 맛보며 맘껏 즐긴다고 해도 그 누구도 시비 걸 수는 없으리.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주위에 있는 저자와의 동년배 언니들, 선배들 생각이 났다.

 

결혼 퇴직제도 혹은 육아 때문에 직장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들, 남편의 때 이른 퇴직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녀들, 시집 형제들 간의 반목과 불화에 가슴 답답해하는 그녀들, 여전히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없는 친정을 생각하며 눈시울 붉히는 그녀들….

 

저자가 아무리 자신을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변해도 뛰어난 사람이고 복 받은 사람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은 뒤로 하더라도 퇴직 후 글을 써보라고 노트북을 사다주는 남편에, 사촌들(저자에게는 조카들)의 서울 나들이에 차를 운전하며 안내를 해주는 착한 대학생 딸에, 사는 게 모두들 편편해 보이는 형제 자매들에, 뜨거운 우정으로 자리를 함께 하고 마음을 나누는 좋은 친구들에, 가진 것 많은 사람의 너그러움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저자의 미덕은, 가만있어도 우아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건만 결코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댄스를 배우기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밥상을 나누고, 친정 엄마 없이 이 땅에서 아기를 낳고 기르는 불법 체류 여성들의 도우미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눈다.

 

나이 먹는 게 싫고 두렵다는 사람도 있고, 저자처럼 즐겁다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싫고 두려운 것을 적극적으로 손 걷어붙이고 나서서 즐겁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은, 나는 어느 쪽인가? 나이 드는 일 역시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에 따라 두렵게 혹은 즐겁게 다가오는 것일까? 

 

지금 어느 쪽에 있든 더 나은 쪽으로 내가 만들어 나갈 수만 있다면 그보다 다행스러운 일은 없겠다. 그러나 한 끼의 식사를 걱정하고, 쑤시는 몸이 버겁고, 바람 잘 날 없는 자식들로 마음 무거운 어르신들의 시대가 가고 나면 과연 나이 먹는 게 즐겁다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저자처럼 스스로 즐거움을 만들어내고, 행복하게 나이 먹는 길을 찾아나서는 일, 참 좋은 일이다. 저자의 말대로 "여생이란 없다. 살아 있는 모든 날의 시제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나이 먹는 즐거움> 박어진 지음 / 한겨레 출판, 2007.

2008.01.15 18:0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나이 먹는 즐거움> 박어진 지음 / 한겨레 출판, 2007.

나이 먹는 즐거움 - 박어진의 좌충우돌 갱년기 보고서

박어진 지음,
한겨레출판, 2007


#박어진 #나이 먹는 즐거움 #책 속의 노년 #나이 듦 #갱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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