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징보트호주의 북부해안 대보초(G,B.R)를 항해하며 다이빙 포인트를 안내해 주는 배다.
장호준
국적이 각각인 여러 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호주의 대보초를 항해한 적이 있다. 낮이면 그들이 안내하는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하고 다이빙이 끝나면 다음 목적지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크루즈 보트 다이빙이었다. 좁은 배 안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지난 지 며칠이 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럼이 없어졌다. 저녁 어스름 무렵 보트 승무원들이 낚시도구를 챙겨 배의 뒤 갑판으로 나왔다.
외줄낚싯대에다가 어른의 가운데 손가락만한 새우를 미끼로 끼워 던지자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물려 올라왔다. 몇 마리리가 잡히자 곧 회가 쳐졌다. 일본인들도 몇 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보아하니 먹을 줄만 아는 사람들이었다.
도리 없이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나가서 회를 쳤다. 껍질을 벗기고, 살과 뼈를 발라내고, 발라낸 살들을 마른 수건으로 훔치고…. 주위에는 그 배에 탄 모든 외국인들이 둘러서 있었다. 싱가포르국적을 가진 중국인, 베트남인, 미국인, 영국인, 일본인, 그들은 회를 치는 사람의 손놀림과 그 과정을 보며 간간이 탄성을 질렀다.
이윽고 먹을 시간이 왔다. 소스는 두 가지, 우리가 가져 온 고추장과 일본인들이 가져 온 ‘와사비’였다. 우리는 와사비에 찍어먹고, 일본인들은 고추장에 찍어먹고, 옆에서 구경하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러는 우리의 모습이 신기해서 쳐다보고…. 회에는 술이 따르는 법, 종이팩으로 사 소주도 한 컵씩 돌렸다.
한국인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주위 사람들을 모른 체 하고 먹을 리가 없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아닌가. 우리나라 국민들이 인정이 없다고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섰다.
그는 젓가락으로 회 서너 점을 집더니 와사비를 듬뿍 찍어서 한 외국인의 입에 넣어주고, 또 고추장을 듬뿍 찍어서 그 옆에 있는 외국인의 입에 넣어주었다. 물론 그들은 안 먹겠다고 소리 지르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는 그런 것을 무시했다. 그럴수록 더욱 권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예의범절, 그는 드디어 강제로 입을 벌리고…. 그들은 회 맛을 피할 수 없었다. 갑판에서 때 아닌 소동이 일어났다. 물론 이 회를 먹인 우리 일행인 그 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갑판의 한 쪽에 수줍은 듯 서 있었다.
일본이 부강해지면서 그들의 ‘스시’ 문화가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에 진출해 있다지만 음식문화가 한 나라의 일상에 오르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아마도 그들 외국인들은 그날 우리의 회를 난생 처음으로 경험했을 것이다.
회중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맛을 내게 선사한 회는 물회였다. 물고기라면 일단 사람들은 비린내를 생각한다. 거기다가 물이라! 왠지 더욱더 비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회다. 처음으로 그 집에서 물회를 맛 본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진정한 물회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감동에 이런 맛은 국가가 보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 다음부터 나는 서귀포에 도착하는 즉시 다이빙 가방을 던져놓고 그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것은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서귀포에서 삼십여 분 차를 타고 나가면 바닷물이 집 앞 마당에서 찰랑거리는 그 집이 나오고 얼음을 둥둥 띄운 자리돔, 한치, 소라, 물회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내게는 그 맛을 글로 알릴 재주가 없다. 다만 나중에는 그 맛을 나 혼자 알아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까지 생겨 서귀포에만 가면 그 물회 맛을 못 본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할 의무라도 있는 것처럼 그 집으로 안내했다.
그때 함께 간 한 친구가 그 물회 맛을 보더니 감격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는 남들 앞에서 처음 먹어봤다고 말하기가 좀 거시기 했던지 식사를 끝내고 나온 나를 옆 골목으로 데리고 가더니 감동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야!”
재료가 신선하면 비린내도 없다. 고등어도 갈치도 금방 건져 올린 놈을 회를 쳐 놓으면 비린내가 없다. 어물전에서 파는 고등어가 비린내가 몹시 난다면 그것은 오래되었다는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싱싱하고 신선한 사람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뭔가 감추고 있는 사람, 어딘가 상해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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