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1월 13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자료사진)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인수위'가 토론을 중시했다면 '이명박 인수위'는 실천을 강조했다. '노무현 인수위'가 과정에 비중을 뒀다면 '이명박 인수위'는 결과를 앞세웠다. 무엇보다 '이명박 인수위'와 과거 인수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속도'에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8일 각 정부 부처 업무보고 청취를 끝내고 2차 활동에 접어들었다. 지난 2일 교육인적자원부를 시작으로 한 부처 업무보고는 휴일도 없이 진행돼 1주일만에 마무리됐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시절 2주일이 걸렸던 것에 비하면 초고속이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속도위반이다","너무 성급하다" 등의 우려가 터져나왔지만,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서두르는 것과 속도를 내는 것은 다르다"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10년만의 '정권교체'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인수위측 설명이지만, 건설업체 CEO 출신인 이명박 당선인의 스타일 탓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노무현은 '주도형'... 이명박은 '위임형'과 '관여형'의 중간""노태우 대통령 인수위원장인 이춘구 전 국회부의장은 '위임형'이었고, 김영삼 대통령 인수위원장인 정원식 전 총리는 '방임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인수위원장이었던 이종찬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은 '관여형'으로 볼 수 있다."한때 새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까지 거론됐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지난달 말 열린 '대통령직 인수 심포지엄'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 대해선 "토론을 좋아하는 양반이라 분과별 간사 회의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회의를 주재하고, 회의 내용을 TV로 중계하는 의욕을 가졌다"며 '주도형'으로 분류했다.
실제 노 대통령은 당시 "토론공화국이라고 말할 정도로 토론이 일상화됐으면 좋겠다"고 천명한 뒤, 부처 업무보고가 기존의 '나열식 보고와 지시'의 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이 '토론공화국' 건설에 공을 들인 것은 수직적 지시·보고에 의존한 공직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주의를 청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또한 정책결정에서 절차의 민주성 확보라는 국정운영의 획기적인 변화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부처 공직자들은 '토론공화국' 공무원이 될 준비가 돼 있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방화시대 농어민 대책' 토론회. 여러 관련 부처가 모였지만 활발한 해법 제시나 토론이 전혀 이뤄지지 못하자, 노 대통령은 "농민들이 빚덩이를 안고 고통받는 상황에서 공무원은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게 큰 문제"라며 "농림부 공무원들은 전원 사표쓸 각오를 하라"고 호통을 쳤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도형'이었다면 이명박 당선인은 어떤 스타일일까? 윤여준 전 장관은 "이명박 당선인은 '위임형'과 '관여형'의 중간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 당선인은 지난달 26일 인수위 출범 때 전체회의를 1차례 주재한 것 외에는 인수위 업무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2개월여의 인수위 시절 동안 15차례나 크고 작은 회의를 주재한 것과 대조적이다.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이명박일단 외형상으로만 보면 이 당선인은 이경숙 위원장에게 인수위 운영을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보이지 않게 인수위 운영 밑바닥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 있다. 당초 인수위가 부처 업무보고 기간을 당초 10일로 잡았다가, 종국에는 8일만에 끝낸 것도 이 당선인의 "공기 단축이 곧 공익"이라는 평소 지론을 '받든' 것이다.
인수위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오전 7시 30분이면 간사단 회의를 시작하고,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할애해 부처 업무보고를 받았다. 기업 CEO 출신 당선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대목이다. 노 대통령이 "휴식도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투자"라며 '일요일은 휴무'라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나, "아침 일찍 서두른다고 일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며 당초 오전 8시로 잡혀있던 회의 시간을 오전 9시 30분으로 늦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당선인의 슬림화되고 효율적인 회의 진행 지시에 따라 아침에 샌드위치나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면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고, 하루종일 이어졌던 보고도 2∼3시간으로 줄였다"고 설명했다.
8일 이 당선인이 국회를 방문해 "함께 국정을 운영해 나갈 동반자"라며 협조를 요청하고 돌아오자, 9일 오전 이경숙 위원장이 간사단에게 "인수위에서도 국회와 동행할 수있는 청사진을 짜야 한다"고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수위의 모든 안테나가 이명박 당선인을 향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이번 인수위가 토론보다는 실무와 결과를 중시하는 것도 과거 인수위와의 차이점이다. 노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9차례 토론을 벌이고 국민을 대상으로 TV토론까지 한 반면, 이 당선인은 앞으로도 공개 토론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게 인수위측 설명이지만,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이 당선인의 스타일 때문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