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한 사람도 똥이 마렵습니다!

[평범한 아줌마 선생의 인도여행 ⑩] 맥간을 떠나다

등록 2008.01.05 19:59수정 2008.01.0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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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8월 1일까지의 짧은 일기

 

7월 28일 토

 

 “요가는 자기 몸과 우주가 서로 이어져있음을 깨닫고 궁극에는 하나로 합일되는 과정입니다. 우주는 두 가지 기운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태양의 기운인 양을 해라하고, 달의 기운인 음을 달이라고 합니다. 두 기운은 우리 몸에.....”

 

 ‘저런...해와 달...우리말과 뜻도, 발음마저 똑같다니?'

 

동시에 영석씨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한 우연일 수 없었다. 우리말이라 여기던 언어의 뿌리가 이곳에까지 미치고 있었다니. 도대체 늘 습관적으로 네 것 내 것 구분 짓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결국에는 모두 서로 만나고, 만나서 통하고 나면 하나가 되고 마는 것을...

 

 동작들은 일정한 질서를 이루되 동작과 동작 사이에 부드럽지만 깊은 호흡으로 연결되었다. 호흡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가 생을 다할 때까지 계속된다. 따라서 호흡을 느끼는 것은 몸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쉽게 ‘현재’를 일깨워주는 방법이란다.

 

그래서일까? 호흡에 마음과 정신을 모으는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있단 분명한 사실이외는 이런 걸 두고, 無 혹은 空이라 하는 걸까? 적어도  나는 평화로웠고, 한 호흡을 나누고 또 나누고 잘디잘게 느끼면 느낄수록...그 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7월 29일 일

 

 일요일 아침..히말라야가 마치 섬같이 떠있다. 히말라야의 허리를 두르고 있는 하얀 비구름은 안개 낀 바다 같고. 지루하지 않은 일상. 이 게스트하우스가 주는 최상의 풍경.

 

  어제 저녁을 굶은 것이 화근일까?  괜히 트림만 계속 나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 요가 전이지만 뭐 좀 먹어두는 편이 낫겠다. 테이블 위 티벳빵에 꼬물꼬물 개미떼들이 포식을 하고 있다. 보리과자와 토마토 한 개, 커드(요플레 같은)를 조금 먹었다.  

 

  박수나트를 벗어나 영석씨와 시내로 들어설 때였다. 지팡이를 집은 채 헤어져 낡디 낡은 승복을 걸친 한 노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가깝게 다가올수록 차라리 걸인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은 사두라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이해한 것은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주춤거리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동전 몇 개를 꺼내 손바닥 위에 쨍그렁 펼쳐보였다. 거기엔 우리나라 100원짜리와 500원짜리 동전도 두 개 끼여 있었다. 그 두 개를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사두는 고개를 저으며 달라는 시늉을 했다. “이 동전은 교환도 되지 않을 뿐더러 이곳에서는 사용가치가 없을 텐데요”했지만, 그는 거듭 내놓으라는 듯 얼굴을 근엄하게 쏘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아, 이렇게 해서 스와지들에게 보시하는 거구먼!’


  그는 돈을 챙긴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팡이를 꼭꼭 누르며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다른 걸인처럼 두 손을 모으고 박시시하며 구걸하지도 않았고, 어디 부러진 다리를 내밀며 동정을 받으려 하지도 않았고, “헬로! 마담”하며 끈질기게 쫓아다니지도 않았다. 아마 그랬다면 동전 한 닢 얻지 못했을 터였다. 한동안 멍하게 서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빨래비누도 사야 되는데, 우습지만, 오늘 명상하는 내내 빨래비누 생각만 나는 거있죠.”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거인이라도 걸려 넘어지게 되죠.”
“하하하. 그렇군요.”
“참, 날씨가 이렇게 변덕스럽고 햇빛이 부족해서 감기 걸리기 쉬워요. 히말라야 제품 들어보셨지요? 인도여행자면 누구나 알고 한 두 가지씩 사게 된다는. 화장품도 있고 약도 있고요. 그 중에 Tulasi라는 감기약이 있어요. Tulasi는 인도에서는 성스러운 나무로 통한데요. 인도가정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집근처에 이 나무를 심고, 그 주위를 돌면서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답니다. 그 나뭇잎으로 만든 건강식품인데요, 감기예방에 아주 좋아요. 가격도 70루피로 비싸지 않구요. 저희 아이들 감기 기운이 조금만 있어도 먹여요. 덕분인지 아직 크게 앓아보지 않았어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가 그치고 나면 세상은 적막하다. 연일 귀가 먹먹해질 만한 장대비를 듣다보니, 비가 그치고 난 후의 적막 또한 또렷했다. 그랬다. 빗소리가 자리했던 곳은 커다란 빈 항아리 속의 울림 같은 적막을 남겨놓곤 했다.

 

그리고 풀잎위의 물방울이 흔들리다 똑똑 떨어질 무렵이 되서야 새들의 맑고 높은 지저귐이 적막을 뚫고 날아올랐다. 그러나 적막은 꿈쩍하지 않았다. 젖은 흙더미 땅속으로 스며든 빗물이 몰래 졸졸 흘러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주인집 빨랫줄에 거둬들이지 못해 널려있던 빨랫감에 맺힌 물방울이 힘없이 똑~똑 떨어질 때도 집안에 누구도 내다보지 않았다. 그랬다. 비가 그치면 오랫동안 적막했다. 이곳 인적이 거의 없던 숲속의 게스트하우스 근처는 유난히 적막이 진하고 진했다. 그 때 떠돌던 적막을 나중에라도 오랫동안 기억하리라. 

 

 햇빛이 나기 시작하자 시내구경을 하기로 했다. 어쨌든 점심도 먹어야 했다. 비가 말끔히 그치고 정말 오랜만에 눈앞에 파란하늘과 싱그러워진 나뭇잎들이 눈이 부셨다. 뒷목 뻐근하게 고개를 들고 해바라기 하며 걸었다. 거리는 활기차 보였다. 길에서 바로 튀겨 파는 팝콘 한 봉지 사고, 류시화의 20대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는 인도의 전설적인 연주자 Ravi Shankar의 타블라 연주 시디를 샀다.

 

7월 30일 월

 

요가 마지막 날. 날이 환하게 밝았다. 서로 길이 다른데, 어느 지점에서 만난다. 즉 우연히 두 길이 교차한다. 그런 교차점들, 만남들이 이어지고 스토리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 된단다. 여행 중에는 만남의 교차점이 왜 이리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지.

 

 요가센터 울타리담 위에서 정으로 돌을 쪼며 작업하는 인도인 노동자들이 보였다.

 

'탕~ 탕탕~ 탕탕탕~~'

 

돌에 부딪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이탈리안 요기 나탈리가 디카를 꺼내어 그 모습을 찍는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단순한 도구를 사용하여 손으로 돌을 쓰다듬듯이 만져가며 쪼고 또 쪼아 돌을 변화시켰다. 어디에서는 이미 과거에 묻혀 스러져간 것이 어디에서는 여전히 남아 진화를 기다린다.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한분도 낙오 없이 늦거나 빠짐없이 성실히 5일간의 수련을 마쳐주셨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하는 모습도 몰래 훔쳐보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셔서 계속 수련하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익히신 동작만 꾸준히 반복하셔도 여러분의 생활은 활기 넘기고, 여러분의 몸과 마음은 나날이 건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 기억하실 것이 있습니다. 모든 동작은 최소한 10분 이상 유지되어야합니다. 또한 동작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순서를 흩뜨리지 마세요. 식사 후는 피해야 하며, 야외 태양빛이 강한 곳에서의 수련은 금물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아저씨 아이작이 자꾸 옆에서 우리말로 물어온다.


“쬬아요? 오케이? 응?”

 

 아이작은 겨우 몇 가지 익힌 우리말을 능청스럽게 시도 때도 없이 잘 쓴다. 얼굴만 봐도 웃음부터 나온다. 수련 중엔 말 좀 걸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웃음이 나오면 동작은 금방 무너진다. 몸에서 힘이 다 풀려버리니까.

 

 Himalayan Lyengar Yoga Centre  (Address: Dharamshala Village Dharamkot, Dharamshala H.P. 176219  India  * Phone/Fax [91]01892 2121312 ) 에서의 Five Day courses(Five day courses for all levels start every Thursday 8.30 am. Booking on Monday 1.30 pm)가 모두 끝났다.

 

“목사님의 두 아이들은 행복한 거에요. 이런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아이가 몇이나 되겠어요? 아이들도 좋아하죠? 지금 이 시간들을 말이예요.”
“네. 좋아해요. 우선 공부를 안 하니깐요. 하하. 한국에 있을 땐 특히, 컴퓨터요. 그 때문에 아이들의 정서가 너무 메말라가고있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컴퓨터랑 TV 모두 없애도 봤는데 친구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도 쉽지 않더라구요.”
“네. 컴퓨터를 생각하면 열이 받혀요. 뭐랄까, 그냥 눈 뜨고 당하는 기분이랄까요? 내 아이들을 제가 보는 앞에서 빼앗기는 기분이예요.”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인터넷 게임을 초등학생에게 허락하면 법적으로 걸린다는데요.”
“네. 그들의 그런 마인드가 부럽죠. 필요한 조처를 필요할 때 정확히 하는 거요. 암튼, 아이들이 이렇게 여행하고 나면 마음이 부쩍 커있겠어요. 그걸 어떻게 다 짐작할 수 있겠어요?”
“네, 그러기를 바라죠. 하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예요.”
“아마도 이 시간들이 아이들에겐 평생 재산이 될 거에요. 이곳에 더 머무시다가 어디로 가시나요?”
“좀 더 머문 후에 네팔로 가게될 거 같아요.”
“네, 그러시군요.”
“신샘은요?”

“으음, 마날리로 가서 친구가 끼여있는 팀과 합류해서, 함께 레로 올라갈 거에요.”

“요가가 끝났으니, 게스트하우스를 좀 바꾸지 그래요?”
“첨엔 그럴 생각도 있었는데 이젠 익숙해졌는지 그냥저냥 지낼 만해요. 부처님이 보살펴주시겠죠 뭐.”
“이런!  得道한 사람도 똥이 마렵다는 말 못 들어 봤어요? 이곳은 신들이 사는 곳이 아니예요.”
“하하. 득도한 사람도 똥이 마렵닷! 여러 가지로 즐거웠구요. 고마웠어요. 영석씨는 앞으로도 좋은 일들 많이 하실 거에요. 지난번 말씀하신 거처럼 뭣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목자가 되실 거예요.”
“뭘요. 여행 잘 하시고요.아무 탈 없이.”
“가족 모두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래요. 그럼.”

 

돌아오는 길에 베이커리 빵, 우유 한 팩, 미네랄워터, 기념품 몇 가지를 욕심껏 샀다. 그리고 과일가게 앞.


“빨간 사과가 맛있어 보이네요...”

 

사과 서너 알을,
사고 언덕빼기를 오른다.
한 손엔 우산을 받쳐 들고.

품에 봉다리들이 자꾸 흘러내린다.
사과가 담긴 누런 종이봉지에 빗줄기가
파고든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빨간 사과를 품고 있는 
종이봉지가 젖어 소리 없이
찢어지고 있다.
찢어진 종이봉지 사이로 툭~
하고 빨간 사과 하나가 떨어졌다.
떨어져 내리는 사과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사과가 언덕빼기 아래로
떼굴 떼굴
굴러 내려가고 있다.
쫒아갈 수 없었다.
굴러가는 사과만을 바라보았다.
 
7월 31일 화

 

 비의 여신은 구름을 몰고 다니며 히말라야를 하루도 빠짐없이 한 번씩 내려왔다 오르곤 했다. 여신의 치마폭에서 히말라야도 온순해졌다. 밤마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데 익숙해지던 무렵이었다. 빨래가 마르지 않아 조바심 나던 마음도 배낭 속에 대충 쑤셔 박아버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자연의 변화에도 정성이 있고 진심이 있을까?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 방석자리엔 어느 틈에 히피풍의 한 무리의 서양젊은이들이 들어와 있다. 벽에 기대어 늘어진 자세로 담배를 뿜어대기 시작해서 실내가 뿌연 연기로 자욱하다. 이들 이스라엘 대학생들이 피는 담배를 물담배라고 하는데 램프 같은 통에 파이프를 연결해서 끽연을 한단다. 여행자들도 철새와 같다.

 

6월이 오면 유럽젊은이들이 한바탕 이곳을 찾아오고, 7월이면 일본대학생들이 습격해오고, 7월 중순에서 8월이면 이스라엘과 한국의 교사들 대학생들이 몰려온단다. 특히 이스라엘젊은이들은 마리화나를 피우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그래서인지 인도정부에서 이들의 여행비자를 3개월로 제한한다는 말을 들었다.

 

 8월 1일 수

 

 히말라야가 다시 깨끗이 사라진 자리엔 회색하늘이 질감없이 펼쳐져있다. 저 회색구름 뒤켠에 히말라야가 꿋꿋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맥간에서의 마지막 날.

 

  영석씨 부인과 두 아이들 그리고 진희씨와 11시에 버스 스탠드에서 만나 카르마파 라마를 접견하기로 했다. 그 전에 나는 티벳 도서관에 가서 설법(* 티벳도서관 Am 11:00 ~ 12:00 매일 무료)을 들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도서관까지 가는 데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도서관근처는 말하자만 망명 티벳정부의 건물들이 들어서있었다. 물론 낮은 건물 몇 채가 전부이기 하지만.


 조금 늦게 홀에 들어서는 데 문이 앞쪽에만 잇다.  난감한 기분으로 문을 열자마자 좌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체스판의 말들처럼 꼿꼿하고 정연하다. 다행이 아직 시작 전. 이  일사불란한 경건한 분위기들이 모아지는 지점에 누가 있는 걸까?

 

긴장과 함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려졌다. 가운데 방석에 티벳 노승이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있는데 그 표정이란? 뜻밖에 자애였다. 얼굴 가득 미소로 중생들을 바라보는 노승! 웃는 탈바가지 같은.


 노승 옆에 꼽추인 서양여성이 티벳어를 영어로 통역을 한다. 오늘의 주제는 同情이다. ‘동정’은 티벳불교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라한다.

 

“동정이란 나의 고통이 진정한 것이 되었을 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동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정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물건을 건네주었다고 합시다. 진정으로 주었다면 준 후에 건너간 물건에 대해서 생각지 않죠.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물건은 건너갔는지 모르지만 거기에 담겨 있어야 하는 마음은 주지 않은 것입니다.”

 

 도서관 앞에서 비구니스님 일행 3분을 만났다. 일행 중 남자 한 분이 승복차림에다 우리나라 농부들의 밀짚모자를 썼기 때문에 한 눈에 한국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 건물밖 계단이 끝나는 곳에 티벳묵을 팔고있다. 치자로 물들였는지 예쁜 노란색의 묵을 칼국수처럼 가늘게 쳐서 양념을 끼얹어먹는다. 쫄깃쫄깃한 맛이 기대이상으로 감칠 맛 난다. 10루피.

 

모두들 배가 고파있었던 모양이다. 각자 한 그릇씩 먹었지만 왠지 도대체가 배가 부르지 않다. 허기는 채워야 잠잠해지는 법. 채워지지 않을 때 허기는 천둥보다 더 시끄럽다. 빗방울이 병아리 모이 쪼듯이 톡톡 머리위에 부딪고 있다.

 

   성진스님은 시원시원 호탕한 성품에 뜻밖에 속세에 밝고, 속인을 꿰뚫어보는 눈이 상당히 정확하고 예리한 분이었다. 스님일행과 함께 택시를 타고 다시 맥간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스님의 티벳 여행이야기를 들었다.

 

“맥간은 우리나라 읍면수준이지만 인도의 다섯 손가락에 드는 국제적인 관광지죠. 이만하면 일반 관광지에 비해 기운이 좋은 편이지만, 공부하러 온 스님들이 장기간 머물기에는 너무 들떠있고 위험한 느낌이 들어요. 특히 요즘 몰리는 이스라엘 여행자들은 마약이나 빤이라는 씹는 환각성 담배 등을 탐닉하기위해 오는 경우가 많아요. 밤늦게 거리를 다니는 건 위험해요.”

“아...네...참, 티벳여행은 어떠셨어요?”
“티벳의 라싸와 근처에서도 티벳 아이들의 구걸이 많지만 이곳의 구걸과는 차원이 달라요. 정말 굶주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곳엔 초지가 거의 없어요. 황량한 사막이 무진장해요. 그 황량함이란? 사막에 돌, 바위들이 자신을 가려줄 풀, 나무들이 없어 속살처럼 드러나있죠. 처음엔 그 황량함에 도무지 눈을 둘 곳이 없었는데 말이죠. 차츰 그 풍경에 익숙해지자 그 돌들의 원색들이 그대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그런 각양각색의 돌들이 끝없이 펼쳐져요.  중국이 티벳에 침공한 후 자원들을 캐가면서 초지를 헤집어놓고, 티벳인들은 식량이 부족해지니까 초지를 낙농을 위한 목초지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죠. 그 때문에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거 같아요.”

“..............”
“오늘 설법의 주제인 동정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누군가를 돕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일테지요. 하지만, 그 경우 주는 이의 마음과 달리 실제로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어요. 어느 단체에서 그곳 티벳의 한 마을을 돕기로 했죠. 매달 우리 돈 300만원을 꾸준히 보낸 거예요. 그곳 사람들에겐 엄청 큰 돈이죠. 하지만, 몇 년 후에 가보니 인근마을과의 불협화음으로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화되어있었다는 거예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가죠.”
“그렇군요..”

“불교에서는 시간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죠. 시간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부처님께선 아주 작은 티끌에 다시 우주가 있고 그 우주의 티끌 속에 다시 우주가 있고...그런 시간의 무한대를 겁이라 하셨죠. 스님의 옷 끝자락이 바위를 스쳐 그 바위가 씻기고 닳아 없어지는 시간..”
“우오아.....!! 기 막혀요. 그런데, 참, 저는 카르마파라마를 만나러 갈 예정이예요..같이 가실래요?”
 
 신전까지는 택시로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로 꽤 먼 편이다. 택시비가 한 대당 300루피로 일행이 나눠 내면되니 부담이 없다. 두 대의 택시로 나뉘어 우리는 오랜만에 시원한 드라이브를 즐겼다. 주변의 풍경이 순간순간 바뀌고 있다. 앙증맞은 들꽃들이 도로변을 곱게 수놓고 있다.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또렷하게 뒷 배경으로 독수리 날개 펼치듯 자리 잡고 있는 그림 같은 카르마파라마 수도원. 사극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건물외양하며 길 양쪽 3-4층짜리 즐비한 빌라형 건물들은 찍어놓은 벽돌모양 같은데 이 모두가 스님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숙소라한다. 가운데 계단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곳의 끝에 대사원이 앉아있다.

 

그곳에 카르마파라마가 있다. 일정한 날짜에만 대중과 만나는 데, 이날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일일이 몸을 검사한다. 가방이나 카메라 일체의 것은 갖고 들어갈 수없다. 라마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다.

 

 성진스님과 나란이 앉았다. 스님 옆에는 젖먹이 아기를 품에 안은 티벳 젊은여인이 있었다. 스님은 아기엄마에게 허락을 받아 아기의 그 여리고 자그마한 손가락을 조심스레 만져보셨다. 입가엔 미소였지만 스님의 두 눈동자는 뜻밖에 눈물이 어리고계셨다. 그 표정을 내게 들키셨다. 비구니스님인 성진스님. 아기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니실 터인데도. 그때 스님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옴”은 무슨 뜻인가요?“
“이 우주의 힘을 뜻한다고 하는데요. 정확한 풀이 라고 할 순 없죠. 산스크리트어는 워낙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서 현대의 언어로 풀이하려면 장황해지는데다 풀이 또한 쉽지 않죠. 그래서 그대로 사용하는 걸꺼예요. 인디언의 언어, 산스크리트어 등 옛날의 언어는 깊고 통합적인데, 현대어는 세분화로 잘디잘게 나뉘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사물의 깊은 본질을 탐구하는데 언어가 도리어 장애가 되어버렸어요. 언어는 곧 생각의 그릇인데 생각도 장애에 부딪게 되죠. 그래서 묵언이 오히려 본질에 다가가는데 도움이 되죠. 지시만 남고 뜻은 잃어가는 듯해요. 아마도, 서양인들 중 점차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런 한계를 느끼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카르마파라마는 젊고 준수한 외모의 카리스마 넘치는 분이었다. 어떻게 저리 어린 나이에 담대한 모습일 수 있을까?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나이를 초월하는지. 족히 3백여 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그 앞을 지나며 고개 숙여 빨간 줄을 건네받는다. 이 빨간 줄을 왼손의 손목에 감아 신성한 마음을 몸에 지닌다. 부처의 마음, 라마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모두 하나 되기를. 티벳 사람들은 좋겠다. 누구나 마음속에 멘토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열흘간 지낸 이곳 맥간에서
 풀어놓았던 짐들을 주섬주섬
 배낭에 포개 넣는다.
 배낭 곳곳에서 습하고
 퀘퀘한 곰팡내가
 구겨져있다.
 옷가지며 양말.
 한번 젖은 책 가장자리로 얼룩과
 접히고 찢겨진 비의 흔적들.
 내 몸에도 혹시 곰팡내가
 배어있는 건 아닐까?
 킁킁거리며
 냄새를 핧는다.
 찾고 있었던 건 냄새였는데
 이것저것 마구 뒤적거린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내일 이 방을 나서는 순간,
 난 뭔가 잃어버릴 것만 같다.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뒤돌아봐도
 무언지 모를 것만 같다.
 그림자가 어지럽게 흩어지고,
 그런 내 그림자가 안쓰럽다.
 다 챙겼나?
 뭘 더 챙겨야하는데.
 그게 뭐꼬? 

2008.01.05 19:59ⓒ 2008 OhmyNews
#인도여행 #맥그로드 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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