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비닐봉지 속에 대파가 들어있었다. 할머니 마음이 느껴진다.
전갑남
누가 수수와 대파를 갖다놓았을까? 쪽지를 남긴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쉽게 짐작이 간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이웃 밭을 가꾸는 장터 할머니가 가을걷이 끝낸 후, 대파를 뽑으러 왔다가 수수와 파를 놓고 가신 것 같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작은 것에 감동한다는 말이 맞다. 아마 거기에는 정성이 담긴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할머니의 소박한 마음과 정성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고마우신 장터 할머니해가 서산으로 넘어간다. 서산에 걸린 해가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만큼이나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내가 때맞춰 차를 몰고 들어왔다.
"여보, 장터 할머니가 수수를 갖다놓으셨나 봐!"
"수수를 요? 올해도 또 보내셨네."
수수가 든 봉지를 보고 아내도 감동 먹은 표정이다. 각별히 우리를 챙겨주시는 장터 할머니, 그 마음을 읽고도 남음이 있어서 일게다.
할머니는 우리 대문 바로 앞에 있는 밭을 가꾸신다. 조그만 밭떼기에 만물상을 차리듯 이것저것 많이 심는다. 각종 푸성귀며 고추, 고구마, 파, 콩 등을 심는다. 가용으로 주로 쓰고, 남는 것은 내다 팔기도 한다.
할머니는 팔순을 넘긴 연세이다. 무릎관절이 편치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니신다. 한 발짝 한 발짝 옮길 때마다 힘이 들어 보인다. 그래도 밭일할 때는 어디서 힘이 나오는 걸까? 얼굴을 마주대하면 늘 웃음을 잃지 않으시며 말씀이 푸짐하시다.
"이놈의 밭일, 힘이 들어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면 편할 것 같은데, 손을 놀리면 좀이 쑤시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몰라. 돈도 안 되는 일한다고 아들 녀석은 한사코 말리는데!"
할머니한테는 어찌 보면 밭이 안방이나 마찬가지다. 호미가 닳도록 틈이 나면 밭에서 사신다.
지난 여름, 장맛비가 그치자 할머니는 수수 모종을 한 움큼 들고 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