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의 자화상(Self Portrait)1810, Black chalk,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Friedrich
19세기 초, 독일 낭만주의의 화가(Romantic painter), 프리드리히는 광활하고 신비한 느낌의 풍경화나 계절을 바탕으로 한 풍경화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이런 그림들을 통해 자연의 힘 앞에 직면한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었으며, 낭만주의 운동의 주요관심이었던 숭고한 인상을 확립하였습니다.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독일, 1774. 9. 5 - 1840. 5. 7) 는 독일의 북동부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주(州)에 있는 도시인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에서 태어났습니다. 1794년에서 1798년까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Copenhagen)에 있는 코펜하겐 아카데미(Academy of Copenhagen)에서 그림공부를 마쳤습니다.
1798년 이래로는 독일 남동부 작센주(州)의 주요도시인 드레스덴(Dresden)에 정착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낭만주의 운동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던 1816년에는 드레스덴 아카데미(Academy of Dresden)에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824년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1807년까지 수채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그 이후로는 전통적인 종교그림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순수한 풍경화나 산의 일출과 일몰 등 매혹적인 독일 풍경과 고딕 전통으로 귀환하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그의 풍경화에는 상징적 요소들이 점차 풍부해집니다.
1840년까지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미술교수로 재직하던 드레스덴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펜을 이용해 윤곽을 그렸던 그의 초기작품과 중기작품 대부분은 드레스덴, 베를린, 함부르크 등지의 미술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으며, 자연풍경에 대한 감응을 더 많이 반영했던 후기작품들은 오히려 러시아 각지에 산재되어 있습니다.
풍경 소재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을, 겨울, 새벽, 안개, 월광 등의 정경을 독특한 고요함과 정적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독특한 화풍은 드레스덴 지방 이외로는 거의 전파되지 않아서 독일화단에서도 잊혀졌었으나, 20세기 초 이래로 재평가되었습니다.
오히려 오늘날에는 19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가장 순수한 독일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