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덮인 마을 설경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새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마을 풍경
정부흥
일 년 전에는 응급실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지금은 지난 추석 연휴 때부터 집사람과 둘이서 짓기 시작한 오두막에 누워 고즈넉한 설국의 풍경을 즐기고 있다. 오두막을 짓는 초기에는 객지생활 때문에 혈당관리에 적신호가 켜지기도 했다.
그러나 고생과 행복이 반복되고 만족이 뒤따른 오두막 짓기에 집중하는가 하면 집사람이 조리한 안정된 식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일 년 전 일이 새삼스럽다.
지난 해, 나에게 커다란 소득이 있었다면 <오마이뉴스>를 알고 기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세운 것이다. 독자를 의식한 글을 써보지 않은 나에겐 힘든 과정이었지만 지금은 글을 다듬을 수 있는 약간의 안목도 생긴 것 같다.
평생 수행자로 살겠다는 삶의 방향은 설정한 상태였지만 구체적으로 현세를 살고 있는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그분들과 대화한 내용을 기사로 쓰겠다는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올해부터는 선지식과 선문답이 가능한 경지에 이르도록 간단없이 공부를 해야겠다.
지리산 농장에 터를 만들려고 내려올 당시만 해도 '정박사 목수된 사연'을 쓸 생각은 없었다. 하도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 때문에 메모 형식으로 동창회 카페에 글을 썼고 이것이 기사가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모스크바 근교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다차'와 같은 별장을 갖게 되었다. 이제 다음 주에는 오두막의 포치와 데크를 시공하고 에필로그를 써야겠다. 글을 꼭 써야 한다는 것도 자신을 속박하는 하나의 굴레일 수 있다. 쓰고 싶을 때 쓰는 자유를 찾고 싶다.
아파트 생활하는 많은 사람이 뜨끈뜨끈한 온돌방 아랫목에 허리를 뉘고 게으름을 피우는 맛을 못 잊어 한다. 전기온돌 패널을 구들장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설설 끓는 방바닥을 지고 함박눈이 차곡차곡 쌓이는 산야를 바라보면서 새해를 설계하는 재미가 그만이다.
광주에서 송년회를 위해 형제들이 모두 모이기로 했다. 서울의 여동생까지 참석하니 맏형이고 큰오빠인 내가 꼭 참석해야 한다. 그러나 아침 6시에 발표한 대설 주의보를 듣고 불가피한 모임도 아닌 친목모임에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까지 갔다가 저녁 늦게 다시 지리산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처럼 생각되었다.
매우 어려웠지만 참석하지 못한다는 연락을 하고 서울에서 세배 차 내려온다는 딸과 사위에게도 좋은 날이 하늘의 별같이 많은데 궂은 날씨에 명분때문에 무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삼가라는 전화를 하고나니 31일과 1일 이틀이 순수한 우리의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