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훈 교사
박상규
지난 여름, <오마이뉴스>에 처음 연락을 했던 건 오성훈(42) 교사다. 그 때 오 교사는 "학교가 학생에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갖고 교육당국과 맞섰다. 그의 노력은 동호공고를 지키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그는 교육당국에 '찍혔고', 오랫동안 현장을 지키는 교사로 남게 됐다.
"사실 얼마 전부터 교직에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일을 고민했었고, 장학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내가 변신을 해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 이것도 물 건너갔다. 내 인생에서 다른 선택은 없을 것 같다. 내가 앞장서 지킨 학교가 아닌가. 이제 죽으나 사나 동호공고와 함께 해야 한다(웃음)."오 선생은 87학번으로 전형적인 386세대다. 그는 386세대로서 자존심이 있다. 그가 대학에서 경험한 세계는 지금도 그의 삶을 방향을 정하는 좌표이기도 하다.
오 선생은 "세상에 물들고 싶지 않아서 교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인데 최소한 사기 치며 살 수 없지 않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또 오 교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세상은 그 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살고 살지만 지난 여름의 싸움은 역시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싸움을 한다는 건 이기겠다는 욕심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게 아닌가. 누군가를 이겨야만 하고,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과정 자체가 참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 것 같다. 다시는 그런 싸움 못할 것 같다. 많이 힘들었는데, 싸워야 하는 일 자체가 없으면 좋겠다."오 선생은 폐교 반대의 뜻을 밝힌 학생들의 서명용지를 지금도 갖고 있다. 지난 여름 학생들은 스스로 서명용지를 만들고 그곳에 당당하게 자신들의 이름을 적었다. 그 때 오 선생은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스스로 서명으로 자신의 뜻을 밝혔다. 모든 걸 학생들이 준비한 것인데, 얼마나 기특하고 교육적인 일인가. 그리고 서명은 가장 이상적인 의사표시 방법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걸 못하게 막았다. 선생들이 알아서 해주겠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난 결국 학생들에게 '교육청에 전달하겠다'는 말로 서명용지를 챙겼다."오 교사는 "앞으로 최소한 3년 내에 동호공고에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동호공고는 올해에 입학하는 신입생 모집을 마쳤다. 오 교사는 "우수한 학생이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오 교사는 지난 여름 교육청 관계자가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오 교사는 "어차피 동호공고는 방송특성화 고등학교로 해도 성공 못한다"는 말을 언급하며 "어쨌든 소중한 아이들인데 내가 책임지겠다, 꼭 여기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 교사는 "폐교를 추진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듣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못들을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생각해보면 다른 길을 모색했던 오 교사의 발목을 잡은 건 동호공고였다. 그리고 오 교사는 지금 동호공고와 함께 달리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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