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앞에서. 김상무님과 김교수님
조영님
세계 평화에 기여한 세계 각국 지도자의 동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반갑게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상도 있었다. 힘 있게 오른팔을 들고 뭔가를 역설하는 듯한 예의 그 표정이 생동감 있게 조각되어 있었다. ‘김대중 선생님’이라며 한마디씩 하고 기념촬영을 하였다. 여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으로’라는 세계화평성시(世界和平聖詩)도 있다. 짓궂은 이 교수님은 ‘김정일’의 동상도 있는지 확인한다며 96개국 정상들의 동상을 하나하나 보았다. 그러나 김정일의 동상은 없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몹시 추웠다. 황량한 세계화평공원을 찾은 관람객은 우리 일행 외에는 없었고, 동상 외에는 달리 볼 만한 것이 없었다. 공원 한쪽에 있는 놀이기구를 보니 더 썰렁하였다. 그렇지만 공원을 끼고 있는 해안선은 참 아름다웠다. 여름에는 피서객과 놀이기구를 타는 어린이들로 쾌 북적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한 그들은 여순에 있는 ‘역사박물관’과 ‘뱀박물관’을 추천하였지만 중국통인 이 교수님은 안 봐도 될 것 같다며 대련 시내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그들은 여러 번 박물관 견학을 추천하였다. 아니, 강권을 하였다. 가는 길에 여순감옥을 지나쳤다. 지나가면서 ‘이곳이 여순감옥이다’는 말도 없이 그냥 지나쳐서 사진도 한 장 찍지 못하였다. 감옥 앞에서 차를 멈추면 안 된다는 말만 하였다.
잠시 후에 허름한 식당 앞에서 봉고차가 멈췄다. 우리는 분명히 깨끗한 대련 시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겠노라고 몇 번 이야기 했는데 그들은 우리의 요구를 단번에 묵살하고 여순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했다. 음식값은 연대보다 갑절이나 비쌌다. 기가 막혔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정리해 보니 분명히 ‘중국 여행단에 팔려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동 기사가 대련 관광단에 우리를 넘긴 것이었다. 중국통인 이 교수님도 혀를 차며 분노하였다. 올해 3월부터 ‘나홀로 여행’을 줄기차게 시도했던 김 교수님이나 나 역시도 이런 일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봉고차는 또 한 번 멈추었다. 우리에게는 말도 없이 진주를 파는 기념품 가게에 간 것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움직이기도 싫고, 물건을 사는 것에도 흥미가 없어 차 안에 있겠노라고 하니까 억지로 내 등을 떠다밀며 진주 가게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진주를 파는 사람들도 물건을 팔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여자 가이드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대련으로 들어가서 성해공원(星海公園), 중산광장까지 둘러보고 저들을 떼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저들한테 끌려다니다가는 저녁 배를 타기 전까지 저들이 짜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일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