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만한 세상!

큰 화를 막아준 고마운 사람

등록 2007.12.26 14:54수정 2007.12.26 16:0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씨가 주차브레이크가 풀려 서서히 내려가는 차 바퀴에 돌을 괴는 모습.
만화예술학과에 다니는 조카가 그린 그림
이씨가 주차브레이크가 풀려 서서히 내려가는 차 바퀴에 돌을 괴는 모습. 만화예술학과에 다니는 조카가 그린 그림 오진경
이씨가 주차브레이크가 풀려 서서히 내려가는 차 바퀴에 돌을 괴는 모습. 만화예술학과에 다니는 조카가 그린 그림 ⓒ 오진경

"여보! 차가 미끄러져 내려간대!"


아내의 다급한 전화였다.


며칠 전 일이다. 색소폰 교습을 받기 위해 노면이 평편한 주차 공간을 찾았으나 적당한 자리가 없어 약간 경사진 곳에 주차했다. 주차를 하면서도 평소 주차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걱정이 돼 1단 기어로 놓고 다시 한 번 확인 후 교습소에서 연습을 끝내고 학원을 막 나오려는 찰나였다.

 

부리나케 주차 현장으로 달려가니, 차는 10여 미터나 내려왔고 모르는 행인이 차 뒷바퀴에 커다란 돌을 받쳐놓고 옆에 서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악수를 하고 명함을 받았다. 이경운! 여수 교육청 앞 이코노마트에서 과일 도·소매상을 한다.


차가 그대로 내려갔으면 대로변으로 내려갔을 테고 다른 차나 행인에게 부딪쳤으면 어쨌을까를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파트에 과일 배달을 끝내고 신호를 기다리는 데 갑자기 길가에 주차된 차가 슬슬 내려가자, 자기 차를 주차해 놓고 인근에서 큰 돌을 주워 양쪽 뒷바퀴에 턱을 괴고 차 앞 유리창에 써진 전화번호로 연락했다는 이씨의 설명이다.


고마운 마음에 사례를 하려 했으나 “다른 사람도 그 상황이었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는 이씨를, 저녁이나 같이하고 싶어 사진을 찍으려는 데 지나가는 한 아저씨가 “왜 사진을 찍으세요? 참 착한 사람이니 예쁘게 찍어주세요”하며 부탁한다.


잘 아는 분이냐는 물음에 같은 교회 교인이라는 최종언씨는 “이씨는 불우이웃돕기와 봉사활동도 하고 경로당 같은 데 과일도 지원하기도 한다”며 칭찬이다. 마트에서 판매일을 하는 아주머니의 얘기는 “이씨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착하다”고 전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와 이경운씨
이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와 이경운씨 오문수
이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와 이경운씨 ⓒ 오문수


장사를 하며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를 묻자, “2년 전 경기도 살던 후배가 부인하고 내려와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요청해 순천에 과일가게를 차려 줬는데 아무 연락도 없이 도망가 5천만원을 떼이게 됐을 때”란다.


장사를 하면서 보람은 손님이 “좋은 과일 맛있게 먹었다”고 칭찬해줄 때라며 함박웃음이다. 사업원칙은 같은 지역에 비슷한 가게가 많기 때문에 손해만 아니면 싸고 맛있는 과일을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소매상이지만 도매가격으로 파는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하여 경쟁력을 확보한다.


과일을 고르는 비결은 아침 6시 청과 조합에 나가 눈으로 보기 좋은 과일을 3종류 정도 골라 반드시 먹어보고 사는 것을 신조로 여긴다. 그는 누가 와도 믿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장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37살인 이씨는 아직도 미혼이다. 대학교 때 한 번 사귀어 본 뒤로는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장사하느라 여자를 만날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그는, “결혼 안 할거냐?”는 질문에 “이제는 모든 게 준비돼 장가만 가면 되고 부모님도 날마다 성화다”고 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순박하고 성실한 이씨 같은 사람이 있어 그래도 살만하다.

덧붙이는 글 | u포터 뉴스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 합니다

2007.12.26 14:54ⓒ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u포터 뉴스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 합니다
#고마운 사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