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과 어우러진 우리집 항아리들, 이 항아리들 때문에 우리는 사기꾼들의 표적이 되었다.
오창경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입찰 마감일은 월요일이라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던 우리에게도 사건을 정리할 시간은 충분했다. 공개 입찰 마감일에 닥쳐서 우리와 접촉을 시도하면서 법률적인 용어들을 자주 입에 올리며 유난히 경제력을 과시하는 그들은 분명 우리가 사는 폐교가 탐이 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폐교는 부동산업자들이나 사업장을 마련할 사람들이 노릴 만한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한 평범한 입지에 있었다. 우리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입주를 했다가 이제는 정도 들었고 나은 조건으로 이사를 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짐작이 갔지만 공개 매각 입찰 마감일이 닥쳐왔고 그들이 공개 입찰에 뛰어든 이상 우리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드디어 공개 입찰일이 되었고 입찰 장 앞에는 우리와 그 유치원 업자, 대구에서 온 노인, 경기도에서 온 중년의 사내가 팽팽한 긴장감을 감춘 채 서 있었다.
“사장님, 생각을 해 보세요. 저들이 대구에서 경기도에서 여기까지 왔다갔다 하고 신경쓰고 한 게 어딘데 쉽게 빠져주겠어요. 5백씩 달라는 게 무리는 아니죠.”
그 유치원 업자는 아예 브로커의 본색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서 5백씩 주면 입찰에서 빠져 주기로 나머지 두 입찰자들을 설득해 놓았다면서 당장 입금을 해주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나오는 한, 이제는 우리가 칼자루를 잡아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 우리가 입찰 시간까지 시간을 끌면 그들도 초조해질 것이며 막상은 입찰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다.
유치원 업자는 입찰 포기를 한 상태에서 공개 입찰이 시작되었다. 교육청에서 제시한 공시지가보다 많은 가격을 쓰는 사람이 그 가격으로 우리 폐교를 인수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공시지가보다 높게 써내서 우리 폐교를 인수하게 된다고 해도 우리는 수중에 그 만한 돈이 없었다. 이제 새로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밖에 안 된 우리에게 그 만한 돈을 벌었을 리 만무했고 은행 빚을 끌어 들이기에도 그 이자를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자를 물어내다가 감당을 못해서 은행에 넘어가는 사태가 온다면 굳이 그 폐교를 소유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입찰 결과, 경기도 남자는 공시지가에 밑도는 가격을 썼고 그 대구 노인네는 공시지가보다 만 원쯤 올린 가격을 썼다. 남편은 공시지가에서 낱투리 없이 앞자리 두 개만 쓴 가격인 1억5천만원만을 썼다. 그들이 사기꾼임을 알게 된 만큼 남편은 공시지가 이상으로 써서 낙찰을 받는 것보다는 이사 가는 것이 낫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폐교는 단 3일 동안의 해프닝을 통해 단돈 만원 차이로 대구에서 온 노인네에게 낙찰되었다.
덧붙이는 글 | <폐교 이야기> 공모 글
기사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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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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