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생각이 암세포를 만듭니다

등록 2007.12.19 13:34수정 2007.12.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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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얏호~ 일곱시다."

 

 오늘 아침은 시계를 보며 두 팔을 하늘로 번쩍 들었습니다. 잠을 푸욱 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잠을 잘 자고 나면 입맛도 돌고 컨디션이 아주 좋기 때문이죠.

 

 일찍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보통 5시에 잠을 깹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잠을 설치다가 3시에도 일어나고 4시에도 일어납니다. 그러더니 어제는 낮잠을 2번이나 자고 밤 10시도 안 되어 잠이 들더니 아침 7시까지 잠을 잤습니다. 주치의의 말이 떠오릅니다.

 

 "소양인은 늘 긴장하기 때문에 잠을 많이 자야 합니다."

 

 하지만 긴장된 몸에 잠이 오나요? 아무튼 지난 주 금요일에 깨진 몸의 리듬이 나흘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친정에서 분가한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친정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잡니다. 그래도 생각이 오락가락하며 마음을 흐리는 날이면 영락없이 잠을 설치고 컨디션이 다운되어 회복하는 데 며칠씩 고생을 합니다.

 

 어제는 남편이 늦게 귀가한다기에 15분 거리의 친정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제가 음식을 가리기 때문에 불쑥 찾아가면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빔밥을 해 먹을 요량으로 집에 있는 야채를 싸들고 갔지요. 어머니는 제가 가지고 간 야채를 썰고 호박을 볶아 비빔밥 재료를 만들어주셨습니다.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늙으신 어머니가 나를 위해 수고 하시는 게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TV를 보며 마음 편히 어머니가 부르시길 기다렸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말릴 수 없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 앞에 이제야 굴복을 한 거죠.

 

 대단한 모녀였습니다. 주시려고만 하시는 어머니나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딸이나 막상막하였습니다. 옛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지만 저희 어머닌 절 이기셨습니다. 엄마 때문에 내가 병 났다고 시퍼런 칼을 뽑아 들어도 우리 어머닌 끄떡 않으셨습니다. 외골로 흐르는 사랑에 질식하겠다고 아무리 외쳐도 메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착하디 착하던 이 딸은 어머니에게 평생 해보지 못한 패악을 부렸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

 

 "엄마가 싫어."

 "엄마가 해주는 은식은 다 맛이 없어."

 "엄마는 아주 나쁜 엄마야."

……………………

 

 나이 50된 딸이 살림해 주시는 80 노모에게 이렇게 퍼부었습니다. 호흡 곤란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대니 이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습니다.

 

 이 괘씸한 년, 나쁜 년,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야. 하시길 바랐지만 어머닌

 

 "그렇게 해서라도 속이 풀리면 얼마든지 해라."

 

 늘 그러셨습니다.

 

 남편과 둘이 이사를 나온 지 한 달. 어머니도 저도 자유롭고 좋습니다. 그래선지 오랜만에 저를 보신 어머니는 내가 건강할 때 하시던 것처럼 이런 저런 푸념을 늘어놓으셨습니다. 나도 그러려니 하며 들었습니다. 이번엔 어머니가 볼멘소릴 하십니다.

 

 "요새 동생들이 널 닮아가는지 날 함부로 하는 거 같애."

 "작은 엄마 아프다고 니가 쪼르르 달려가는 게 부럽더라."

 "……………."

 

 "엄만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야. 다들 잘 사는 데 엄마는 우리가 엄마 걱정시킨다고 하시니

 우리도 이제 지쳤어."

 

 "자식이 부모 걱정 안시키는 데 어느 부모가 미쳤다고 걱정하겠냐?"

 

 그 때 내 입에서 툭 튀어 나온 말

 

 "엄마한테선 찬바람이 불어."

 

 방으로 들어가시려다 주춤하고 돌아서시는 늙고 조그만 어머니가 너무나 가엾었습니다.

 

 "아이고,우리 엄마. 애기네. 애기야."

 

 나는 엄마를 품에 포옥 안고 엉덩이도 꼬집고 등도 토닥여 드렸습니다.

 

"아이고 좋다. 한 번 더 안아 보자."

 

 하시며 엄마는 내 품으로 파고 드셨습니다. 껍질만 남으신 엉덩이. 앙상한 등을 만지며 눈물이 나려는 데 어머니가 화안히 웃으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우리 모녀 사이엔 깊고 깊은 생각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닌 평생을 오로지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는 일만 생각하셨습니다. 첫째가 얼마나 마음이 여린지, 당신이 무심코 뱉은 말을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지, 큰 아들이 왜 잔머릴 굴리며 거짓말을 하는지, 막내가 어째서 어머니에게 막말을 하는지는 모르고 사셨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주도면밀한 인생 설계 속에 우리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빨리 빨리 키우고 결혼시키면 당신 일은 끝난다. 그리고 노후에 자식한테 손 안벌리려면 알뜰히 모아서 월세받는 상가를 장만해야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셨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어머니께 도리를 다하느라 애썼지 어머니께 마음 깊이 감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대학 다닐 때 정말 깊은 감사를 했었습니다. 여행을 가겠다면 두 말없이 허락하시는 어머니가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내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어머니가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부터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의절하자시며 말리던 저의 결혼생활에 어머니는 번번히 불만이셨고 내 기운으로 살아보게 제발 놔두시라 해도 듣지 않으시고 어머니는 애 키우며 직장 다니는 내게 한약을 해 오곤 하셨습니다.

 

 늘 부족한 딸이었습니다. 용돈을 드려도

 "어떻게 번 돈 인데……"

 하시며 받지 않으시고

 "백서방은 왜 그렇게 남 좋은 일만 하고 지 앞가림도 못하냐?"

 하셨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어머니께 인정받지 못하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몇 번 수술을 받는 동안 도리어 병원비다 이사비다 목돈을 받다 보니 고마운 마음 보단 죄책감만 쌓여갔습니다.

 

 어머니와 우리 5형제는 모두 영민했지만 마음은 차고 머리가 뜨거워 삶이 고단했습니다.

 

특히 맏이인 내가 심했습니다. 사람을 머리로 따져가며 사귀었으니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고 늘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교직에 있을 땐 순수한 10대들과 늘 행복할 수 있었지만  돈을 벌겠다고 사표를 낸 10여년 전부터 웃을 일도 없고 늘 이런 저런 결핍에 자존심만 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큰 놈이 자력으로 외고에 입학하고 씀씀이가 늘어나고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생각 보따리는 커져만 가고 조그만 장사에 마음이 끌렸지만 남편의 반대에 부딪히고 50만원 받으며 학원에 나가던 2년은 생존을 위해 나를 다스려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유방암이 발병했지요.

 

 어머니와 제가 서로의 고통을 마음으로 보듬지 못하고  머리로 이해하려 했기에 끝없는 대화가 반복되어도 우리는 어긋나기만 했던 겁니다. 그 고리를 내가 끊어야했지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병이 깊어 그럴 힘이 부족했습니다.

 

 나흘 전에도 새벽 4시가 못되어 잠이 깨었는 데 스치는 생각이 있어 그 시간에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그러면서 몸의 리듬이 깨진 거지요. 어제 하루 종일 잠을 잔 덕분에 오늘 아침  몸의 상태가 좋습니다. 새벽 5시에 잠이 깨이며 샤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고 가벼운 운동을 했습니다. 거울 속의 내 눈과 마주치는 순간

 "지금 샤워가 하고 싶어?"

 

 물어보니 대답이 없습니다. 거실로 나와 하늘을 보며 운동을 조금 더 했습니다.잠이 옵니다. 7시까지 다시 달게 잤습니다.

 

 생각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부모는 부모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해야 하며 선생은 선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 그 엄청난 생각의 무게를 나도 모르게 가슴에 앉고 살아왔습니다. 내 생각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고 나 자신은 비난 받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니 병이 날 수밖에요. 필요 이상의 생각과 걱정으로 내가 나를 괴롭혀 왔기에 병을 치료하는 일은 이제 간단합니다. 생각을 내려놓고 순리대로 사는 것이지요.

 

 오늘,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과 즐기는 일~

 

 이것이 최고의 치료약입니다.

2007.12.19 13:34ⓒ 2007 OhmyNews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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