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내가 물을 꿀꺽꿀꺽 마시고 있네!

마음의 힘

등록 2007.12.15 17:13수정 2007.12.1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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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이건만 평소처럼 새벽 6시에 잠이 깨었습니다.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

 

 중얼거리며 이불 속에서 쭈욱 키 늘이기를 합니다.

 

 물고기가 헤엄을 치 듯 몸을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고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어둠에 잠긴 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며 날이 샐 때까지 무엇을 할까? 생각합니다.

 

 엊저녁에 널어놓은 방안의 빨래를 개킬까? 뭘 좀 마실까? 백팔배를 할까?........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부자리 위에 앉았습니다. 손이 저절로 발바닥으로 갔습니다.

 

생각없이 발바닥을 슬슬 만지니 하품이 납니다.

 

 '그렇지! 오늘을 살자면 몸을 잘 만들어 놔야지.'(몸안의 가스를 많이 토해낼수록 하루살이가 편합니다.)

 

 하품은 몸을 깨우는 첫 신호입니다. 발을 만지는 동안 계속 하품이 나는 것도 재미납니다.

발가락을 구부리면 땅에 닿는 부분이 굳은 살 박힌 것처럼 뭉쳐있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니 이번엔 기침이 터져 나옵니다. 기침에 따라 가래가 올라오고 이어서 갸르륵 갸르륵 속트름이 올라옵니다. 갸르륵 소리는 숨을 내 쉴 때마다 끝없이 나옵니다. 알 나을 닭처럼.

 

 드디어 뿌웅 방귀까지  나오면

 "고오맙습니다."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내 몸에 감사하는 거지요. 내 몸이라 해도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언제부턴가 몸도 마음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르겠거든 몸을 봐라. 몸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 몸이 맘이다" 되뇌며 몸에 신경을 썼습니다. 사랑 받으면 마음이 즐겁 듯 몸도 편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기분 좋으면 맘도 편하고요.

 

 2년 투병 생활 중 어느 때보다 몸에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3년간의 친정살이를 접고 부부만 따로 살게 된 것도 크게 도움이 되고 있지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간단히 과일로 요기를 하고 끈끈이 부직포로 바닥의 먼지를 깨끗이 청소합니다. 개운한 기분으로 따듯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30분 정도 반신욕을 한 다음(친정은 오래된 단독 주택이라 욕조가 없었습니다) 얼굴과 온 몸에 로션을 바릅니다. 지금까지 안하던 짓이죠. 얼굴에 바르기도 아까운 로션을 그것도 듬뿍 몸에 발라대는 나를 보며 차암 많이 변했구나 생각합니다.

 

 나를 아끼는 시간.

 

 정말 행복합니다. 뼈가 앙상한 내 몸에 로션을 골고루 바르며 그동안 돌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입니다.거울을 들여다 보며 미소 띤 얼굴에 스킨 로션을 바르고 영양크림을 바릅니다.토닥토닥 얼굴을 두드리며 '으음~예쁘네. 우아하게도 생겼어. 멋진 걸. 좋아 좋아............' 그러면 거울 속의 내가 활짝 웃으며 눈가에 주름을 만듭니다.

 

 외출이 있는 날은 에센스에 아이크림까지 바르죠.에센스와 아이크림은 나이 50에 처음 써보는 것입니다. 잘 웃어서 눈가에 주름이 많던 중학교 동창은 대학 다닐 때부터 아이크림을 발랐습니다. 참 유난스럽다 생각하며  "나는 자연스러운게 좋더라" 하면서 '어디 나이 들어서 보자'며 시샘인지 불만인지 모를 감정을 가졌더랬습니다. 그 친구 시집가서 시댁 일로 마음 고생 많았지만 나보다 곱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너무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누구나 저 잘 난 맛에 사는 법이라 나도 나의 장점을 압니다. 하지만 남보다 잘나보이려면 내가 가진 장점은 기본이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끝없이 채워야했습니다. 그것이 욕심인 줄을 까마득히 모르고 나의 장점은 겸손으로 가렸습니다. 겸손 속에 자라는 오만이 결국 내 몸에 독을 만들었겠죠?

 

 방바닥에 휴지가 수북히 쌓였습니다.

 

 몸이 따끈한 보리차를 달라고 합니다. 기꺼이 일어나 휴지도 버리고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보리물을 컵에 가득 담아 두 손으로 컵의 열기를 느껴가며 맛있게 마십니다. 간간이 기침이 터져 나오고 갸르륵 소리는 계속됩니다.몸이 어느 정도 깨어났는 지 여기 저기서 신호를 보내옵니다.

 

 "여기요,여기요. 여기도요."

 

 찌르르르 옆구리로 전류가 흘러가고 수술 부위가 뻐근하고 발가락이 따끔거리기도 합니다. 허벅지가 시리고 두피 밑 혈관이 팽팽하게 아파옵니다. 하지만 통증이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적은 없습니다. 오른 쪽 가슴을 수술해서인 지 통증은 90%가 오른쪽입니다. 요즘 추가된 증상은 유방암이 재발된 폐 부위의 등쪽에서 보내오는 신호입니다.척추 부근에 동전만한 너비로 야릇한 느낌이 있습니다. 막힌 곳이 뚫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뭉친 것이 풀리는 것도 같습니다. 이 느낌이 시작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느낌이 올 때마다 마음도 부드럽게 풀리는 것 같아 좋습니다.

 

 역시 암도 마음병인 것이 분명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인명은 재천'이라는 믿음으로 어렵게 밀어내고 치료 여부는 의사 소관이니 의사에게 맡겨 버렸습니다. 늙으신 시어머님, 친정 어머님에게 끼치는 염려로 안고 있던 부담도 죄송하지만 그 분들의 몫으로 돌려드렸습니다. 대신 그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늘 품고 삽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도 고마움으로 돌렸습니다. 고3 아들의 대입 문제 또한 아들에 대한 믿음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마음 정리를 하고 나니 내가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 나를 사랑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미련이 남을 것 같은 물건은 무리를 해서라도 샀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에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먼저 연락했습니다. 화가 나면 상대가 누구건 시원하게 화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몸과 마음을 살폈습니다. 먹여 주고 재워 주고 만져 주었습니다. 설거지하면서 골프공을 밟고 밥을 먹다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친구랑 얘기를 하다가 손바닥을 두드리고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딸이 그리워 눈물이 나면 마냥 울었습니다. 헉헉 거리며 방바닥을 호랑이 걸음으로 기었습니다.

 

 여기저기 쑤시고 시릴 때마다, 가슴이 아파 올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모두가 몸이 살아나는 증상이라 믿었습니다. 운동 중에 엉치 부분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습니다. 몸의 상하로 기운이 뚫리는 거라고 믿었습니다. 요며칠 몸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숨이 차서 헉 헉 거리는 것도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물론 밥도 잘 내려갑니다. 며칠 전엔 물을 마시다가 두 손을 가슴에 얹고 감사의 마음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어찌나 몸이 고맙고 감사하던지 두 손이 가슴에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엉? 내가 지금 꿀꺽 꿀꺽 물을 마시고 있네."

 

 넉 달 정도 되었습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막혔다가 겨우 쉰 목소리로 떠듬거리더니 요즈음 목소리가 조금씩 풀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은커녕 물을 시원하게 마시지 못했습니다. 한 모금 꼴깍 넘긴 다음 다시 한 모금을 마시며 언제 쯤 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셔볼까 했는데 어느날 그 희망이 이루어져 있었던 겁니다.

 

 몸은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려해도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을 믿기로 했습니다. 몸이 아프건 기침이 나고 피가 넘어오건 걱정않고 그냥 믿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몸을 살리는 과정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으니 오히려 감사의 마음이 생깁니다. 숨이 멎을만큼 기침이 쏟아지는 순간에 감사합니다. 필요없는 것을을 뱉어내는 것이기에 고맙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믿고 몸을 믿고  기쁘게 사는 일에만 신경을 씁니다. 마음의 평화가 암세포를 몰아내는 일에 가속도를 붙여줄겁니다. 온전한 건강을 돌려받는 그날이 어느날 내 곁에 와 있을겁니다.

2007.12.15 17:13ⓒ 2007 OhmyNews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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