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안경원 김동근 대표. 어릴때 부터 안경만드는 아버지일을 거들었다고 하는 그는 자기가 안경사 될거라고는 생각도 안해 봤다고 한다.
김갑봉
이곳 안경점에서 태어난 김 사장은 “내가 63년생인데, 가게 문을 연 것은 태어나기 전이라고 듣기만 했다.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며 “다만 가게를 열기 전 아버지께서는 노점에서 안경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지금은 광학기술이 발달해 시력검사하고 그에 맞는 렌즈를 조제·가공하는데 즉, 안경 하나 만드는 데 15분이면 되지만 당시에는 일일이 유리를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지금 대부분의 안경알은 플라스틱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안경알이 렌즈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유리렌즈였다. 또한 지금은 자동화기기를 통해 금방이면 안경이 만들어지지만 김국철 선생이 안경을 만들던 때는 시력검사 후 안경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 안경점이 없던 강화나 김포에서는 안경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고 한다.
김동근 사장에 의하면 당시에는 하나의 안경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부평에 나온 김에 시장에 들러 술 한 잔씩 하기 마련이라 취하면 언제 올 줄 몰라 가게 문을 닫지도 못하고 아침까지 기다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기다리면서 손님을 맞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 사는 덤이었다고 한다.
김 사장은 원래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그런 그가 안경사 일을 배우게 된 데는 부친의 부탁이 있었다고 한다. 안경사제도가 도입된 것이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때라 당시 김국철 선생은 반세기 넘게 안경을 만들어 왔음에도 불구, 안경사 자격을 다시 따야 했기 때문에 김 사장이 안경사 공부를 해서 안경사가 돼 아버지와 함께 이 일을 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대를 이어 이 일을 할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늘 가게 앞은 안경을 맞추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로 붐볐고, 김 사장도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드라이버를 들고 안경을 조립해주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지금은 아침 9시 반에 문 열어 9시에 닫지만 그때는 아침 7시 반에 문을 열고 자정이 돼야 문을 닫았기 때문에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 대를 잇겠다는 생각은 정말 없었다”고 미소 지으며 당시를 전했다.
부평안경원. 정확한 시작년도는 김 선생이 노상에서 안경을 만들 때로 보면 족히 반세기가 넘는다. 부평안경원을 찾는 고객 중에 4대에 걸쳐 이곳만 고집하는 손님이 있는 걸 보면 짐작이 간다.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김 사장. “하고 싶은 아이가 있다면 나 또한 이 일을 내 자식에게 대를 잇게 해 부평 안경의 역사를 잇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말 속에서 묵묵히 부평을 지키고 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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