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과 편백나무 숲오두막은 밤나무 단지와 편백나무 숲 경계에 있어 앞으로는 밤나무, 뒤로는 편백나무 숲을 볼 수있다.
정부흥
합판으로 막아놓은 오두막 출입구를 열자 서툰 시공 때문에 돌쩌귀가 맞지 않는 문틀이 드러난다. 조심스레 문짝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하자 향긋한 편백나무 향이 코끝으로 지나간다. 그동안 많은 고생이 편백나무 향으로 승화하지 않았나 싶다. 편백나무 향은 깊은 내면을 자극한다.
주말을 이용하여 집을 짓겠다는 계획에 많은 무리가 따른다. 장모님 생신파티, 친척 자녀 결혼식, 부부동반 부산여행 등 삶을 사는데 필요한 각종 모임들이 주말에 있다. 오두막 짓는 일이 지연된다. 주말에 비라도 오는 경우에는 우리에게는 일주일 내내 비가 온 것이 된다.
오두막 터에는 밤나무단지에 설치된 방충등을 켜기 위한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봇대에 설치된 한 개의 콘센트를 사용하여 모든 공구 및 오두막 내부 전기까지 사용하였다. 그러나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전기기사 강형의 자문을 듣고 보니 규격에 맞는 전기설비가 필요하며 아무리 간단한 배선이라고 하더라도 준공 검사 시 자격증 있는 전기기사의 시공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강형은 재료를 주문해 줄테니 가지고 가서 자기가 일러준 대로 분전함, 콘센트, 스위치, 전등 등을 시공하라고 한다. 나와 집사람이 토요일에 시공해놓으면 그 결과를 일요일 오후 지리산 비박등산 하산 길에 오두막에 들러 전기설비 시공 상태를 점검해 주겠단다.
강형의 조언은 당연하나 최종 마감인 편백나무 루바 설치 공정까지 끝낸 나에게는 암담한 얘기이다. 시공 단계를 두 단계나 되돌리는 벽체 단열단계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루바는 물론 석고보드까지 뜯어내야하며 석고보드는 뜯어내면 다 부스러져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강형에게서 전기설비의 필요성을 들은 이상 안 할 수도 없다. 금요일 오후 강형은 분전함을 비롯하여 전선피복줄 1롤, 전선 3롤, 콘센트, 스위치 등 전기설비에 필요한 재료를 가져왔다. 집에 돌아가니 외부 벽채 마감 후 칠할 오일스테인 3통이 배달되어 덱 위에 놓여있다.
이번 주말 일정은 전기설비부터 다시 해야 한다. 대전을 출발하여 현장에 도착하니 8시이다. 작업장 주변을 정리하고 오두막 내부로 들어섰다. 보고 싶지 않은 실체를 봐야만 하는 고통이 결코 보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는 고통에 비겨 결코 작지 않다.
공들여 붙인 루바가 떨어져나간다. 석고보드를 뜯어내자 나와 집사람이 서로 치겨세우며 재미있게 작업했던 스티로폼이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전기설비를 위한 부분을 칼과 드릴로 도려내고 파낸다.
배전판을 묻고, 전원단자를 설치하고, 실내외 등을 배선하고, 스위치를 두 곳에 설치하고 나니 날이 저문다. 전기설비를 완료하고 시험을 위한 테스터를 찾았지만 공구들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아 찾을 수 없다. 내일 오후 강형이 하산하여 우리 오두막에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