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고등학교
거창고등학교
입시경쟁이 치열하다는 서울 강남의 학부모들 사이에 수년 전부터 수상한 소문이 돌았다. 학원도 없고 과외조차 받지 못하는 환경에 있는 지방의 한 고등학교가 부모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는 서울 8학군의 고등학교를 제치고 서울대와 연·고대에 더 많은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대도시의 학생들이 학원이다 과외다 보충수업이다 입시에 매달리는 시간에 이들은 농사일을 배우고, 가축을 키우며, 토끼몰이에 눈싸움, 심지어는 야영과 예술제까지 대학입시와는 전혀 관계없는 교과목 외 활동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4일 UCC와 시민기자에 관련된 강의를 위해 경남 거창고를 찾았다. 평소에 거창고등학교에 가지고 있던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풀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 학교(경남 거창고등학교) 출신들이 사회에 나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해 올 때가 있습니다. 물론 축하는 해주지만 그렇다고 현수막을 건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공부를 잘해서 고시에 합격한 아이들이나 농사일을 잘 배워 농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나 또 출신지역에서 장사하는 아이들이나 모두 똑같이 성공한 제자이기 때문이지요."
거창고 김선봉 교장은 공부 잘하는 학생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누군가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될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고 했다. 또 거창고는 모든 학생이 자기 능력만큼 공부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목표라며 선언적 교육보다는 실천적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고 거창고와 자신의 교육철학을 강조했다.
▲강의를 듣기 위해 강당에 모인 거창고 학생들
김혜원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10계' |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거창고 강당에는 유명한 '직업선택의 10계'라는 액자가 걸려있다. 거창고의 설립자인 전영창 선생님의 정신과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직업선택 10계명은 낮은 곳으로 임하며 개척과 봉사 희생으로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요즘과 같은 물질 만능, 성공제일주의시대에 한 번쯤 되새겨 볼만한 따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이 유명하고도 유별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과연 어떨까. 강의를 마치고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3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우리 학교가 유명하긴 하지요. 밖에서는 유명대학 합격률이 높은 학교라고 소문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자랑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학생회의가 있다는 것이에요."
"맞아요. 학교에서 열리는 학생들의 모든 행사를 학생회의에서 주관하거든요. 예산편성부터 집행, 행사진행에서 감사까지 학생들이 스스로 하구요. 운동회라면 심판까지도 학생들이 직접 하지요. 선생님이라고 해서 행사에 마구잡이로 끼어들지는 못하십니다. 그 정도로 거창고등학교의 학생회의는 그 권한이 강력하구요. 그런 만큼 행사를 준비하고 운영하는 학생들도 최선을 다 합니다.”
학생들의 말 속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학생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선생님들조차 학생회의의 결정에는 절대 따라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니 막말과 고성, 몸싸움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국회의 국회의원들에게 거창고등학교 학생회의 진행을 녹화해 보여주고 싶다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