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16발해국 황궁 섬돌아래서 발해를 위하여 간단한 제례를 갖추는 강희정 단장
나영수
또한 이곳은 1930년 대에 일본이 만주국을 통하여 만주를 확실히 지배하게 된 후, 군사력을 강화하여 독립군을 압박하였고, 이에 전세가 불리하여져 여러 곳에서 활동하던 여러 계통의 한국독립군들이 모여들었던 곳이다. 또 백산 안희제 선생은 ‘발해농장’을 설립하여 군량미를 공급하고, 대종교 제3세 교주 윤세복(尹世復)의 안전한 활동을 보장한 곳이 바로 동경성이며, 염석주를 찾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황궁으로부터 4㎞ 이내에 ‘80쌍’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호수가 있는데 이것은 발해 왕실을 지을 때 성벽과 건물 기초석을 파낸 자리라 한다. 1쌍(垧)은 중국의 면적단위로 10,000 평방미터(㎡)이며, 80쌍은 800,000 평방미터(㎡)가 된다. 발해농장은 이근처의 하천을 끌어들려 논농사를 짓도록 개간하였으며, 여기서 생산되는 쌀은 석간쌀(石間米)라 하여 중국에서 최고의 품질로 아직도 인정받아 일반미의 5배 이상의 가격을 받는다.
중국정부는 복원을 향후 2년 내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그것이 동북공정의 하나로 중국변방사로 전락시키려는 흑심을 노골화하고 있다. 강희정 단장은 간단한 제례를 올려 역사에 묻힌 발해의 원혼을 달래고 또한 염석주와의 만남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