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우리 말에 마음쓰기 157] 묶음표에 묶인 알파벳들

등록 2007.12.03 11:33수정 2007.12.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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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과다행동장애(ADHD)


… 임신 중에 비타민제를 먹은 어머니한테서 태어난 아이에게 주의력부족 과다행동장애(ADHD)나 정류, 정소가 많고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 2007) 30쪽

 

“임신(妊娠) 중(中)에”는 “애를 배었을 때”나 “아이를 가졌을 때”로 손봅니다.

 

 ┌ 주의력부족 과다행동장애(ADHD)
 └ 주의력부족 과다행동장애

 

보기글에서 말하는 병 이름은 ‘주의력부족 과다행동장애’로 보입니다만, ‘주의력도 모자란 과다행동장애’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어요. 어느 쪽 병 이름이든, 병 이름이 참 길고 어렵습니다. ‘마음을 한곳에 쏟지 못하며 방정맞게 까부는 병’쯤으로 풀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를 하니,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는 이름으로도 뜹니다.

 

 ┌ 어수선하고 칠칠하지 못한
 ├ 뒤죽박죽 방정맞은
 ├ 멍하고 촐랑대는
 └ …

 

‘ADHD’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알파벳을 묶음표를 쳐서 넣어 준다고 해서 병 이름을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누구나 알아듣기 좋은 우리 말로 풀어내어 적어 줄 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병 이름을 처음 지을 때부터, 손쉬운 우리 말로, 깨끗하고 살가운 우리 말로 지으면 한결 좋지 않을까요.

 

ㄴ. 정체성(identity)


… 4ㆍ19세대의 세대로서의 정체성(identity)은 온통 한글, 다시 말해 문화사적 의미에 가려 정치적 의미는 달아나 버린다 … <이현식-곤혹한 비평>(작가들, 2007) 29쪽

 

“문화사적 의미(意味)”나 “정치적 의미”는 “문화사라는 뜻”과 “정치라는 뜻”으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문화사에 가려 정치성은 달아나 버린다”처럼 고쳐 쓰거나.

 

 ┌ 4ㆍ19세대의 세대로서의 정체성(identity) (x)
 └ 4ㆍ19세대라는 자기 정체성 (o)

 

‘세대’라는 말을 두 번 잇달아 적으면서 힘주어 말할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낱말만으로는 모자라다고 느끼며 묶음표를 치고 ‘identity’라는 영어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적으면서 하고픈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렇게까지 적지 않으면 나타낼 수 없다고 느끼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ㄷ. 청정개발체제(CDM)


… 도민이 출자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권 또한 구입하는 형태로 진행하려고 한다. 국내 청정개발체제(CDM) 개념이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녹색연합) 137호(2007.10.) 108쪽

 

‘출자(出資)하고’는 ‘돈을 내고’로 다듬습니다. ‘발생(發生)하는’은 ‘나오는’이나 ‘생기는’으로 다듬고요. “구입(購入)하는 형태(形態)로 진행(進行)하려고”는 “사들이는 짜임새로 해 보려고”로 손봅니다.

 

[클린 개발 메커니즘(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기술·자금 등의 지원을 실시해 온실 효과 가스 배출량을 삭감, 또는 흡수량을 증폭하는 사업을 실시한 결과로서 삭감할 수 있던 배출량의 일정량을 선진국의 온실 효과 가스 배출량의 삭감 분의 일부로 계산할 수 있는 제도이다

 

묶음표를 치고 ‘CDM’이라는 말을 넣습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인터넷 찾아보기를 하니, ‘클린 개발 메커니즘’을 줄인 말이라고 나옵니다.

 

 ┌ 클린 개발 메커니즘
 └ 청정 개발 체제

 

‘클린(Clean)’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청정(淸淨)’이란 또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메커니즘(Mechanism)’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처제(體制)’란 또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 깨끗한 개발 / 맑은 개발

 

환경운동 하는 분들이 좀더 깨끗한 말을 써 줄 수 있다면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환경운동 하는 분들 탓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 생각 머리를 탓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나라밖에서 하는 일만 따라할까요.

 

우리 땅에 걸맞은 우리 틀거리를 알맞게 세울 생각은 왜 못하고 있을까요. 우리 삶터에 알맞은 우리 짜임새를 엮어 보려는 생각은 왜 못하고 있을까요. 우리 사람한테 들어맞는 우리 말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은 왜 보여주지 못하고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7.12.03 11:33ⓒ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영어 #우리말 #우리 말 #묶음표 #우리 말에 마음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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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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