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27일 오후 대전광역시 으능정이 차없는 거리에서 유세를 전에 목도리를 두르고 있다.
권우성
어떤가. 차라리 '경탄'스럽다. 실직 가장을 이용해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 꼴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밀어주는 은근한 선동에 더해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을 '애국자'로 교묘히 여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가. 실직 가장을 위해 지금 절실한 것은 기업의 규제를 푸는 데 있지 않다. 객관적 통계가 입증한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을 받은 1997년 이후 지난 10년 동안 100대기업의 일자리는 65만 개나 줄었다. '평생직장' 개념도 일터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대다수 민중이 고통 받던 10년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한 수출 대기업의 순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따라서 지금 경제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한 '실용'이 아니다. 물론, '공허한 이념'일 수도 없다. 정답은 실용적 이념, 또는 이념적 실용이다.
그렇다. 앙증맞은 딸을 목 졸라 죽인 아비의 손을 누가 움직였는지 정체를 밝혀야 한다. 세 아이를 고층아파트에서 떨어뜨려 죽인 어미의 마음을 누가 어둡게 했는지도 명토 박아둬야 한다. 누구인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더러는 '신자유주의'를 말하면 어렵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대선 쟁점으로 삼을 수 없다는 윤똑똑이들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자유주의는 쉽고 신자유주의는 어려운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체를 적극 알려나가야 옳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처음 선거에서 이겼을 때 열광하는 국민 앞에 자랑스럽게 외쳤다. "신자유주의여, 지옥으로 가라"고.
대다수 국민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이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됨을 정확히 인식할 때, 한국 정치도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다. 생활고를 비관하여 하루 평균 35.5명이 자살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독자가 이 글을 읽은 이 순간도 누군가는 춥고 배고픔을 못 견뎌 생명을 끊고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해온 진보정당 정책에 인색한 언론문제는 신자유주의가 대다수 국민에게 낯선 데 있지 않다. 대다수 언론이 신자유주의 문제를 모르쇠 한 데 있다. 한국 정치에서 줄곧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온 진보정당의 정책을 진보언론조차 온새미로 소개하지 않는다.
진보언론마저 신자유주의 문제를 외면한다면, 진보언론마저 신자유주의 반대를 '이념 지향'이라고 눈 돌린다면, 진보언론마저 진보정당의 정책을 온전히 알리지도 않고 '비현실적'이라 딱지 붙인다면, 이 땅에서 진보정치는 영원히 꽃필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영원히 활개칠 수밖에 없다. 생활고로 하루에 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저 비극의 행렬은 영원히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자녀를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어미의 '지옥도'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영원할 수밖에 없다. 딸을 목 조른 아비의 참극마저 이용해, 자신의 기업에 자녀를 위장취업 시켜 다달이 월급을 준 아비를 대통령으로 세우려는 저 부라퀴들의 살천스런 선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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