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비상은 법당 중앙 석가모니불 좌우에 있었다. 비상이란 비석 모양의 돌에 불상을 조각하거나 또는 글을 적은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 유물은 생천사지(生千寺址) 터에서 발견되었다 한다. 1961년, 당시 이 사찰 소유자가 꿈에 계시를 받고 나서 땅을 파보니 두 개의 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무인명석불상부대좌부터 들여다본다. 돌 4면에 각각 불상을 새겼으며 대좌는 다른 돌로 만들었다. 앞면엔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 양쪽으로 나한상·보살상이 2구 등 모두 다섯 분 부처가 새겨져 있다. 본존불의 머리 부분에는 둥글게 연꽃이 새겨진 광배가 있고, 좌우로 구슬장식과 작은 부처가 새겼으며, 본존불의 대좌에는 연잎과 줄기를 새겼다.
무인(戊寅)이라고 새겨진 명문을 통하여 이 불상이 678년(신라 문무왕 18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칠존석불상은 반타원형의 곱돌로 만들었다. 연꽃무늬가 새겨진 마름모꼴의 돌 표면에 본존여래상을 중심으로 7존불이 새겨져 있다.
대좌 앞면에는 두툼한 연꽃 봉오리를 중심으로 좌우에서 연줄기가 피어오르고, 그 끝에는 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본존불은 연줄기 위에 앉아 있다. 좌우에는 협시보살이 서 있고, 본존과 협시보살 사이에는 상체만 내민 나한상이, 밖으로는 인왕상이 사자를 탄 모습이다.
광배에 새긴 연꽃무늬나 협시보살의 가늘고 긴 신체 등에서 백제 양식의 흔적이 보인다. 칠존석상 역시 불무인명석불상부대좌와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인년은 백제 멸망 2년이 지난 서기 678년이다. 만든 양식이나 시기로 보아 백제 유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50cm가 약간 넘는 크기로 보아 먼 길 가는 이가 휴대용 예불 대상으로 조성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혹은 자신을 위험에서 지켜주는 부적 같은 의미로 지니고 다녔을 수도 있겠다. 망국한 나라가 다시 수복하기를 바라는 백제 유민의 비원이 서린 유물인지도 모른다. 이 두 유물은 비암사 석상, 정안면 석상과 함께 연기 지방 고대미술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내가 법당 안에서 두 유물을 찬찬히 구경하는 동안 할머니 보살께서 문 밖에 기다리고 서 계셨다. "공양을 들고 가라"고 끌어당기시는 걸 끝내 사양하고 비암사로 발길을 옮긴다. 비암사로 가는 길 내내 할머니 보살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슬픔 없이 오래 사시다 가셨으면 좋겠다. 간절함 없이 어찌 이 생을 건너가겠는가.
誓音 深史隱 尊衣希 仰支 兩手 集刀花乎白良
願往生願往生 慕 人 有如 自遣賜立
서원 깊으신 부처님 우러러 바라보며 두 손 곧추 모아
원왕생 원왕생 그리는 이 있다 사뢰소서 - 신라 향가 '원왕생가'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