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방목했던 소를 이끌고 귀가하는 한 할아버지. 어깨에 멘 것은 들짐승을 잡기 위한 사냥총이다.
모종혁
한 생명의 탄생은 오묘하고 소중하다. 태아의 성별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시기에 이미 정해진다. 남자의 X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여자아이가 태어나고, Y염색체를 지닌 정자가 난자와 만나면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이렇게 만난 정자와 난자는 수정이 되어 자궁벽에 착상하고, 한 고귀한 생명은 남녀 성별도 정해져 열 달 후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중국 구이저우성 총장현 잔리촌에서는 과학적 증명과 상식이 뿌리부터 흔들린다. 피임 약재로 임신을 막고 아이를 낳게 해주는 약초를 먹으면 태아를 잉태할 수 있다는 것.
잔리촌 주민들은 임산부면 누구나 '환화초'를 복용하면 아이를 낳을 때 남자와 여자를 가려서 낳게 해준다고 믿는다. 복용 시기도 중요한데, 임신한 지 1~2개월 내에 복용하고 3개월 이후 복용하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태아 생성과 성별 결정의 과학적·의학적 증명과 연구가 잔리촌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허무맹랑한 '환화초', 그러나 거짓이라기엔...현대적인 인구조사가 이뤄진 지난 반세기 정도 동안 잔리촌 전체에서 1남1녀 두 자녀를 둔 가정은 98%에 달했다. 특정 마을 전체를 한 가정 두 자녀로 출산 통제를 할 수 있지만, 첨단의학으로도 가가호호의 태아 성별까지 1남1녀로 모두 조절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아선호사상은 다양한 의학시술로 불법 태아감별과 낙태수술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비해 잔리촌에는 변변한 병원이나 의사가 하나도 없다.
지금도 잔리촌 여인들은 임신 중에도 남자들과 똑같은 농사일과 가정소사를 평소와 다름없이 처리한다. 걸어서 하루가 족히 걸리는 총장현청의 병원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질 못하고, 보통 집안 어른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아이를 낳는다.
임신 3개월 전 태아의 성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환화초의 신비는 과학적으로 볼 때 허무맹랑한 일이다. 하지만 잔리촌에서 일어난 현상을 마냥 거짓이거나 과장됐다고 치부할 수 없다.
류화린(40) 총장현 인구·지화셩위국 주임은 "한 때 환화초의 비밀을 풀고 상업화하기 위해서 정부 내에서 심도 있는 사업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다"고 밝혔다. 류 주임은 "환화초를 비롯해 주민들이 복용하는 약재의 성분을 분석하려 했지만 잔리촌 전체의 저항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면서 "결국 정부도 잔리촌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사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