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이호랑
'경계'란, 삶 속에서 내 마음과 만나는 모든 상황들, 마음을 요란하게 또는 불편하게 하는 모든 사건과 사실들을 말한다. 마음공부는 '경계'를 인식하고, 경계를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학생들은 이런 하루하루의 변화들을 일기로 적게 되고, 지도교사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으로써 감정의 경계에 대해 학습하고, 인내심을 기르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온화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간다.
영산성지고 3학년 OOO(19)양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질이 급한 편이었는데, 마음공부를 하면서부터 인내심이 생기고, 뒤로 한발 물러나 바라보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화가 나거나 혼란스러울 때,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는 것이다."
소개가 끝나고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 도서실을 나왔다. 기다란 복도를 거닐며 둘러보니 과학실 같은, 일반학교에 있을 법한 공간도 종종 눈에 들어왔다. 건물 밖으로 나와 특성화 교실이라 소개하며 조그만 흙집으로 안내해주셨다.
보여주신 곳은 도자기 공예품이 진열된 작은 건물이었다. 학생들이 손수 만든 듯한 도자기들이 선반 위에 가득 놓여 있었다. 다른 방에는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가마가 있었다. 도자기 공예수업은 여기서 진행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도자기 공예는 선택교과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특성화 수업이 있으면 원하는 대로 참여할 수 있다. 원하는 수업이 없더라도, 여럿이 이야기하면 학교에서 수업을 만들어준다.
특성화 교실을 나와 다시 본관으로 걸었다. 수업 시간이라 그런지 밖에 나와 있는 학생을 보기 힘들었다. 가는 길에 나란히 서있는 두 건물이 보였다. 한 건물로 여학생 몇 명이 들어갔다. 두 건물은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였다.
영산성지고의 기숙사에는 '과'라는 것이 있다. 다른 말로는 '세대'라고 한다. 남자 기숙사에는 7개, 여자 기숙사에는 3개의 과가 있는데 각각 늘푸른과, 온누리과 등의 특별한 이름이 정해져있다. 한 세대(과)가 머무는 공간은 기숙사다운 적절한 구성인데, 가운데에 열 명 정도가 모여 앉을 수 있는 거실이 있고, 근처에 4개의 방이 있다. 한 곳은 지도교사가 쓰고, 남은 곳은 한 곳당 3~4명이 들어가게 되어 한 과당 10~12명의 학생들이 머물게 된다.
한 개의 과에는 1~3학년이 골고루 배정되어서 약 10명의 학생들, 과대표 1명, 지도교사 한명이 한 세대를 이룬다. 과대표는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거나 문제가 있는 친구가 있으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자신이 속해있는 과의 아이들을 대표해 이야기한다. 지도교사는 아이들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돌보며, 부모와 오랜 시간 떨어져 있는 아이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준다.
'과'라고 표현해 딱딱한 이미지가 연상될 수 있지만, 한 세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가족처럼 여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항상 같이 자고, 함께 물건을 쓰고,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정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선생님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3학년 OOO(19) 양은 "든든하고,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고, 나를 이끌어 주는 존재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기숙사, 넓게는 영산성지고라는 공간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부모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아무리 상대가 가깝고 편해도 함께라면 불편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느끼는 기숙사의 단점은 무엇일까? 3학년 이솔(19)양은 "물건은 허락을 받고 써야 하는데, 허락도 받지 않고 쓰고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취침시간, 청소주기 같은 생활패턴이 다른 아이와는 많이 엇갈리게 된다. 나까지 생활이 엉망이 돼버리고, 처음엔 쉽게 타협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다분히 다른 사람과의 공동체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문제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