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만치 뒷걸음치고 추운 겨울이 잰걸음으로 오고 있는 듯했다. 김연옥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낙엽이 수북이 깔려 있는 갈색 가을 숲길을 계속 걸어갔다. 속으로 깊어져 가는 나무들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낙엽보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낙엽이 흐릿하게 색이 바랬다. 호젓한 오솔길이 나오면 삶, 사랑, 문학을 열심히 논하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뜬금없이 떠오르기도 했다.
뒤에 오던 콩이 엄마가 갑자기 나무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서 있더니 "내가 죽으면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거다. 나는 죽음 뒤의 세계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콩이 엄마의 느닷없는 그 말에 나는 죽어서 무엇이 될까 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보았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차례 바람이 일었는지 나뭇잎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또 떨어졌다. 이따금 내 등산모에도, 콩이 엄마 머리카락에도 나뭇잎이 툭 떨어져 우리를 즐겁게 했다. 그러나 산길이 생각보다 가파르고 계속 오르락내리락하여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