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 평에 이르는 갈대밭 뒤편의 갯둑을 넘으면 광활한 순천만이 펼쳐진다.
성명은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은 말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갈대를 생각한다. 그 끝없이 이어지는 갈대 군락지, 순천만. 사람들로 하여금 순천을 찾게 만드는 갈대밭, 그것이 순천의 명산물이다.
'무진(Mujin) 10km'라는 이정표는 없었다. 소설 속 '무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무진기행>은 작가 김승옥이 나고 자란 남도 땅 순천을 그 배경으로 했다.
내가 순천만을 찾은 것은 가을의 막바지인 어느 토요일이었다. 순천만은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꼭 찾아야할 '마음의 숙제' 같은 곳이었다. 시내로 들어서자 '정겨운 순천'이라는 띠를 두른 시내버스가 지나다닌다. 처음 와 보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슬며시 가신다. 타지에서 온 이방인들에게도 순천은 이내 정겨운 도시가 된다.
순천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순천만에 갈 수 있게 이정표가 잘 되어있다. 표지판을 따라가자 얼마 안돼 순천만에 다다랐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다도, 배도 아닌 일렬로 줄 세워진 빈 자전거 떼. 왈칵 해풍을 마주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무작정 뛰어 내려가 자전거를 대여한 후 페달을 힘껏 밟아본다.
'삐걱대는' 연인들이라면, 순천만 갈대밭으로...바다와 갈대를 뒤로 한 채 여행객들의 인적이 드문 논길로 돌진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갈대는 평양 시내를 가득 메운 채 꽃술을 들고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을 연상시킨다. 조금 더 가자 긴 둑이 나타났다. 갯둑에 올라서니 순천만이 짠하고 나타난다. 탁 트였으면서도 고즈넉한 바다는 겨울빛을 띠고 있다. 물에 반사되어 내리쬐는 햇볕이 따뜻했지만 겉옷을 침투한 바닷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어온다.
논두렁을 빠져나와 갈밭길이 조성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70만평에 이르는 갈대밭으로 향하는 길에 '무진교'가 있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현대식 다리다. 무진교에서 내려다보이는 갈대밭과 순천만, 그리고 형형색색의 인파는 가을이 절정임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