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 100색, 그 아름다운 '평범한 충격'을 담다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가 들려주는 우리네 삶

등록 2007.11.20 15:34수정 2007.11.2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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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겉그림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겉그림좋은생각
▲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겉그림 ⓒ 좋은생각
벌써부터 새해가 오기를 바라며 서두른 하늘은 눈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첫눈을 흩뿌리고 지나갔습니다. 느낌으로는 12월이 겨울 문턱인데, 첫눈은 이미 우리 곁을 스쳐가며 겨울이 이미 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께 찾아오는 군고구마나 군밤이 반갑기 그지없는 계절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습니다. 다만, 그 맛있는 냄새를 퍼뜨리기 위해 뿜어내는 희뿌연 연기는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삶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군고구마, 군밤 같은 먹을거리만이 아닙니다.

 

알토란같은 둥글둥글한 이야기도 추운 겨울에 제대로 한몫을 감당하는데, 구들 위에서 한껏 몸을 덥힌 아랫목을 휘젓고 다니는 동글동글한 이야기들이 우리네 엉덩이를 들썩이게 합니다.

 

얼었던 몸이 부스스 풀려서이기도 하고 얼었던 맘이 스르르 녹아내려서 그렇기도 합니다. 여기 한 겨울을 잘 이겨내게 할 우리네 이야기보따리가 한 짐 가득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받은 이 이야기보따리는 제 손에만 있지 다른 이 손에는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귀한 짐입니다. 이제 그 짐을 조금 풀어 보여드립니다. [관련글: <시간은 흐르고 추억은 쉬고 싶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흙손']

 

100인 100색, 무거워도 즐거웠던 보따리 시집

 

저는 이 이야기보따리를 새천년을 맞이하려 바쁘던 2000년에 받았습니다. 이 보따리에는 무려 100가지 이야기 곧 100가지 시가 담겨 있는데 다 다른 색이며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짐을 주섬주섬 엮어 보낸 이는 원래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어렵사리 100가지만 추려 담았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눈이 예쁜 것보다/눈빛이 빛나는 것을 보게 하시고//코가 예쁜 것보다 편안한 숨소리를 느끼게 하시고”(<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15쪽에 담은 이 시집 첫 시이자 권나현이 지은 시 '이렇게 사랑하기를' 1, 2연)를 시작으로 편안히 한 호흡으로 마음에 담던 엮은이는 100개 달하는 시들을 모으면서 시가 지닌 멋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했다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코와 입과 손이 예쁜 것보다 편안한 숨소리와 자연스런 미소와 배려하는 손길이 진짜 아름다운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랑이 빛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의 이런 단순성(Simplicity) 속에서 우리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이 빚어내는 단아한 아름다움을 봅니다. 욕심 없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6쪽

 

그러고 보니, 100가지나 되는 이 아름답고 각기 다른 이 멋진 시들이 사실은 다들 투박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시라면 모름지기 조금 비꼬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또는 조금 어려운 말을 써서 알 듯 모를 듯한 갖가지 의미를 덧붙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련만 이 시집에서 만난 시는 첫 시부터 마지막 백 번째 시까지 모두 그리 아리송하지도, 그리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100가지나 되는 꽤 묵직한 보따리를 지금껏 보관하며 힘써 지키고 있나 봅니다.

 

이 시집은 시를 자기 일로 삼은 이들이 아닌 그저 먼지 쌓이는 자기 삶을 조금 곱게 쓰다듬어 주기를 바란 이들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 그들 삶이요 마음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편안히 흐르는 그 물결 위를 따라 읽는 이 마음도 흐릅니다.

 

엮은이가 얼핏 말했듯, 시를 읽다가 문득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함께 애타하는 마음을 불쑥불쑥 느낀다는 것은 시인과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매력적인 고리가 그 시에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어서 쉽게 지나쳤던 그래서 다시 보니 좀 더 세심히 살피지 못한 아쉬움, 미안함, 그리움이 묻어나는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 시집에 담겨 있는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따뜻한 아랫목을 준비하여 드릴 것을 약속하며 여기서 잠시 헤어지려 합니다.

 


-이선미

 

파 한 단 곱게 다듬어

 

이마 단정히 묶어놓고

 

냉이 한 봉지 캐어

 

뿌리마다 고운 빗질하여 놓고

 

풋콩 같은 눈으로

 

늙은 딸 손꼽아 기다리는 아버지

 

-27쪽에 나온 시 전문

덧붙이는 글 |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도종환 엮음. 서울: 좋은생각, 2000.
이 시집을 소개한 다른 글이 제 살림집(blog.ohmynews.com/eddang)에 있으니, '관련된 글'을 보세요.

2007.11.20 15:34ⓒ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도종환 엮음. 서울: 좋은생각, 2000.
이 시집을 소개한 다른 글이 제 살림집(blog.ohmynews.com/eddang)에 있으니, '관련된 글'을 보세요.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좋은님 100인 지음, 도종환 옮김,
좋은생각, 2000


#그대의 사랑 안에서 쉬고 싶습니다 #100인 #도종환 #좋은생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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