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정기상
▲ 꽃 차
ⓒ 정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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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시지요?”
“늘 편안하지. 내 성이 편안할 안이 아닌가?”
은사님은 뵙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은은한 미소가 번지는 모습이 산란한 심정을 진정시켜준다. 일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산란해진다. 진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쉽지가 않다. 감정이란 놈은 워낙 변화무쌍하여 또 다른 나임에도 불구하고 조절하기가 어렵다.
은사님은 변함이 없다. 항상심을 유지하시고 계시고 있으니, 일렁이는 마음을 잡을 수가 있다.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평정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은사님에게서는 고운 향이 배어나는 것이다. 그 향에 취해 있으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햇살에 봄 눈 녹듯이 말끔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링컨은 말했다. 나이 40이 넘게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 오래고 이제는 지천명을 넘어 이순의 나이를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어리석음의 극치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니, 난감한 일이다.
작설 향. 작설차는 선운사가 옛날부터 이름을 얻고 있다. 요즘은 녹차라고 하여 대중화가 되었지만, 작설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9증 9포라 하였던가? 기계로 찻잎을 잘라다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녹차하고는 그 정성에서부터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난다. 대중화를 통해 가까워졌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녹차에서 향을 취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선운사에는 야생 차밭이 많이 남아 있다. 요즘은 수요가 늘어나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차나무에 하얀 꽃이 피었다. 그것도 한두 송이가 아니라 무더기로 피어나 있었다. 초록의 이파리 사이에 피어난 하얀 차 꽃이 그렇게 탐스러울 수가 없다. 마치 함박눈이 내리는 것처럼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은사님의 얼굴과 하얀 차 꽃이 교차한다. 세상의 온갖 고뇌로 인해 고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에 한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은사님의 웃음과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하얀 꽃으로 빛을 더하고 있는 차 꽃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근심과 걱정 불안과 초조는 모두가 바람일 뿐이라는 진리를 알게 해준다.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감정은 삶 자체를 너무 힘들게 한다. 내면에서는 자유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데 반해 날아오르고 싶은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하고 싶은 욕구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그러나 뜻대로 되는 것은 아주 미미하다. 그러니 살아가는 것인 고통이 되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이 그런 것이라고 여기면서 참는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인내한다. 그러나 참는 것이나 인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들이 한계에 도달하면 폭발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화라고 한다. 내면에서 분출하는 분노의 힘이 커지게 되면 나 스스로 자신의 분에 못이겨 폭발하고 마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길로 인해 마음이 어지러웠을 때 작설차 한잔과 대하게 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우선 차에서 배어나는 향이 그렇게 감미로울 수가 없다. 향에 취해 혀 위에 차 한 방울을 떨어뜨리게 되면 그 은은한 맛에 온몸이 감전된다. 혀끝의 예민한 감지를 통해 뇌에 전달이 되고 이는 다시 구석구석까지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