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함께 했던 딸애의 책들. 이 많은 책들 속에 파묻혔던 시간들이 오늘 하루 시험으로 '결과'가 정해진다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다.
한미숙
수능 한 달여 전 즈음해서 딸애는 무척 힘들어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그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집은 계속 집으로 배달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에 ‘야자’가 있었고 그게 끝나면 독서실로 갔다. 새벽에 집을 나가면 다시 늦은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던 때, 딸애는 수능을 잊은 아이처럼 '놀토'가 들어 있는 어느 날, 계속 잠을 자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가 보통 집에서 나가는 시간을 20여분이나 앞당겨 움직였다. 딸애는 무표정하게 ‘그냥 천천히 좀 걷고 싶다’고 말했다. 바쁘게 걷거나 뛰어가는 사람들에 섞여 아이가 밟으면 꺼질 듯 걸음을 살살 내딛었다. 아이를 좇는 내 눈은 마치 딸애가 회색도시를 걸어가는 동화 속의 ‘모모’처럼 보였다.
‘수시’가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어느 날, 딸애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말했다.
“엄마, 내 짜증을 견뎌줘!”
나는 딸애를 꼭 안았다. 그러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나도 딸아이도.
‘짜증을 견뎌달라니. 엄마는 네가 짜증을 부렸다고 여기지 않았단다. 수험생이 되어 표현하고 싶은 감성을 참느라 오히려 네가 잘 견뎠다고 생각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