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어질던 혜경궁 홍씨가 적극적인 모습으로 돌변한 <이산> 속 혜경궁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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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사극의 성패는 역사 속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지는냐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가령 조선시대에서도 늘 사극의 단골소재였던 장희빈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경우 장희빈의 표독스러움이 어떻게 부각이 되고 묘사되어지느냐에 따라서 인기를 얻고 얻지 못하고가 판단되어졌다.
이처럼 사극 속의 인물들이 실존인물들이기 때문에 드라마 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다면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워낙 사극들이 봇물 터지듯 등장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두 개씩은 사극이 있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졌고, 식상해 하는 부분도 많다.
더욱이 한 인물이 사극에서 매번 다루어지다 보니 고정화된 이미지가 부여된 인물의 색다른 점을 찾아 부각시키지 않으면 이전과 달라진 부분을 찾지 못한 시청자들은 그 드라마를 외면할지도 모른다.
그 예로 <왕과 나>는 내시라는 낯선 소재로 파격적인 인기몰이를 시작했지만 극의 중반부에 이르자 과거 <여인천하>와 다르지 않은 내시의 이야기보다 궁중암투가 부각되면서 비슷비슷한 드라마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혜경궁 홍씨가 변신을 꾀하다 이러한 가운데 눈에 띄는 역사 속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비운의 여인으로 알려진 ‘혜경궁 홍씨’이다. 드라마 <이산>과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에 혜경궁 홍씨가 등장하는데 그녀의 기존 이미지가 조금씩 혹은 완벽하게 변신을 꾀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은 17일부터 방송 예정이지만 이미 기존 정조를 다룬 사극과는 다른 시선을 그려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혜경궁 홍씨 인물이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혜경궁 홍씨는 이전 드라마 속에서 <한중록>에 따라 비운의 여인으로 조선시대 개혁시기였던 그 시절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여인으로 그려졌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도 혜경궁 홍씨는 선한 인물 중의 하나였다.
지아비인 사도세자를 잃고 아들 정조를 왕위에 올릴 때까지 숨죽여 살아온 세월을 보더라도 그녀의 삶은 비운 그 자체였다. 또한 자신이 회갑이 되었을 때부터 썼던 <한중록>에서도 이미 자신의 운명이 기구함을 절절하게 써내려갔고, 그러한 문헌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그려냈기에 당연히 혜경궁 홍씨는 비운의 여인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숨죽였던 세월을 보상받듯 다시금 운명이 역전되었지만 그마저도 정조가 일찍 세상을 떠나 그녀의 친정집은 풍비박살이 나 권세를 잃고 또 다시 생을 다할 때까지 숨죽이며 살아야 했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혜경궁 홍씨는 착하고, 어질며, 인내심의 대표주자로 알려졌고 시청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왔다.
또한 드라마 <이산>에서도 분명 극 초반까지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자신의 아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에 늘 노심초사 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아들에 생존을 위협하는 실체가 화완옹주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를 찾아가 일침을 가했다.
“난 세손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말만 전하지만 다음엔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구요”라고 말한 뒤 곧바로 영조를 찾아가 세손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청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드라마 <이산>에서는 아들의 생존을 위해서,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권력암투에 개입하는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보다 한 발 더 앞선 <정조 암살 미스터리 8일>에서는 자신의 친정집 아버지 생존을 위해서 아들과 권력을 다투기까지 하는 모습을 그릴 예정이어서 이전의 혜경궁 홍씨의 모습과 180도 변한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조선시대의 궁중암투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보면 모두가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 안위를 위함이었다. 장희빈이 철저하게 악녀로 그려졌지만 그 안에는 자신과 자신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 중전이 되려 했던 것이며, 선한 인물로만 그려졌던 인현왕후도 그리 순종적인 여인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까운 예로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가 권력암투에 뛰어들어 경빈을 누르고 권세를 잡았던 이유도 자신의 안위와 가문의 영화를 누리고자 함이었다. 즉, 어찌 보면 드라마에서 선악의 구분을 짓고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은 시청자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