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합당, <삼국지연의> 참고했나

<삼국지연의>로 돌아본 '신당-민주당 합당'

등록 2007.11.12 20:18수정 2007.11.1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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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로 돌아보는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합당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의 생명은 '유-손 동맹'이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두 집단이 동맹을 맺은 목적은 단 하나, '반(反) 조조 동맹'이었죠. 두 집단이 내건 기치는 전혀 다릅니다. 유비의 대의가 '한왕실 재건'이었다면, 손권의 대의는 '장강 이남의 지배권 굳히기'였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존의 강동에 형주·익주를 묶은 뒤 서량의 마초와 힘을 합쳐 중원을 노리겠다는 야심을 품은 주유의 부재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주유가 살아있었다면 꿈도 못꿀 동맹이었습니다. 주유가 요절한 뒤, 친유비파로서 '천하삼분지계'에 동의하던 노숙의 발언권이 강해졌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애초부터, '천하삼분지계' 자체가 강남과 형주 일대로 피신한 지식인들의 공동 아이디어였기도 했습니다. 전통적인 강남 호족의 후예였던 주유가 이단아였던 셈이죠.

 

하지만, 우리는 <삼국지연의>를 보면서 명확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반 조조 동맹' 하나로 양가의 이득을 동시에 추구하기엔, 양가는 기치의 차이가 너무 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왕실 재건'은, 한왕실 하의 유씨 일가의 주도권을 기존의 위치로 돌려놓겠다는 것이고, 손권으로서는 아버지와 형이 힘들게 이룩한 기업을 쉽게 갖다받칠 수 없는 입장입니다. 장소·여몽으로 대표되는 반유비파의 발언권 역시 무시할 수 없었고요.

 

그래서, 양가의 동맹은 '형주'라는 먹음직스러운 떡 앞에 무너진 것입니다. 유비로서는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의 핵심이 바로 '형주'였고 목숨보다 귀한 의형제 관우가 지키고 있는 땅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손권으로서도 '형주'야말로 아버지와 형의 한이 스며든 땅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장강 이남을 독점해야 하기에 결코 질 수 없었던거죠.

 

양가의 동맹은 결국 손권의 형주 공격과 관우의 죽음, 그리고 유비의 오 정벌 실패로써 좌초했던 것입니다. 숭상하는 대의가 다른 집단은 아무리 동맹을 맺어도 그 결속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두 집안은 유비 사후 촉한의 힘만으로는 북벌을 시도할 수 없다는 제갈량의 독단적인 추진 아래 다시 뭉쳤습니다. 그 이후에 양가가 갈라지지 않게 된 배경에는 사마씨가 득세하는 위가 중원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자리잡았다는 현실, 그리고 촉한과 오 왕조가 나란히 몰락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범한나라당'이라는 '조조' 앞의,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합당

 

<삼국지연의>가 '중화주의 전파 도구'라는 원죄가 있어도, 정치를 돌아보는데에 있어서는 꽤 쏠쏠한 도구라는 것을 느끼게 된 하루였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일대일로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할 예정이며, 정동영-이인제 양자는 24일까지 단일화할 것을 합의했습니다.

 

애초에, 범여권은 '이회창 출마설'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었다는 점이 원죄로 작용합니다. 단순한 계산으로 보면, 이회창 무소속 후보가 출마를 강행하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반토막내면서, 범여권이 '단일화'만 이룩할 수 있다면, 3강 체제로 나아가면서 '이명박의 리더쉽'과 'BBK와 김경준'만 집요하게 공격하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을 듯합니다.

 

범여권, 특히 대통합민주신당은 기존 여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크다는 것을 계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회창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범한나라당'의 파이가 커졌습니다. 이명박 후보만 존재할 당시에는 50~55%였던 한나라당 지지세가, 이회창 후보 출마 이후에는 60%에 가까워졌거나 넘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찍을 사람도 없긴 매한가지인데 차라리 이회창"이라는 심리를 계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말마따나 "보고 싶은 현실만 보는"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지적한 진정한 지도자의 자격 요건 중 하나가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하고 대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범여권은 이것을 몰랐거나, 아니면 외면한 것입니다.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10~15%로 주저앉았고,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심지어 2%도 안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의 지지율도 5~9%대로 주저앉았습니다. 기존 후보들의 지지율에는 '절대적인 지지층'의 비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비와 손권이 하북과 서량을 정리하며 득세한 조조 앞에 '손-유 동맹'을 맺은 것이 중국 고대의 역사라면, 21세기 대명천지의 대한민국은 아예 촉과 오가 살림을 합치고 유비와 손권 중 한 사람만 왕으로 추대하겠다는 결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나 다름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세력비율도 비슷하죠. 단 1개의 주를 장악했던 유비와 2개 주를 차지했던 손권, 그들이 맞서싸워야 할 조조의 위는 무려 10개 주를 장악한 거대 왕국이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범한나라당'은 60~70%의 지지를 확보하고 있고, '정동영'과 '이인제'는 합쳐봐야 15% 내외입니다.

 

제가 무슨 이야기가 하고픈 것일까요? '반 조조 연대'의 한정된 틀에서 손을 잡았던 촉과 오 조차도 동맹과 부침을 반복했는데, '범한나라당'을 이기는 것과 '기존 텃발 관리'를 동시에 추구한답시고 아예 살림을 합쳐버린다면 과연 오래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서도 범여권이 역사적으로 '결별'과 '합당'을 반복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통합민주당'으로의 통합, '정동영 정치'의 한계

 

인신공격일 수도 있지만, 작심하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정동영 후보의 지난 10년간 정치는 '넓은 안목'이 부재된 정치였습니다.

 

'정풍 운동'도 결국에는 권노갑 전 의원과의 앙금이 오랫동안 남을 수 밖에 없었고, '경선 지킴이'로서 잘 지켜낸 이미지도 '노무현과의 결별'이나 '열린우리당 해체' 등의 과정에서 무너져버렸습니다. 게다가, '동원경선 의혹' 역시 명쾌하게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정풍 운동' 당시의 권노갑 전 의원, 현재의 지지율이 낮으며 저주 대상이 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당장을 생각해보면 정치적 길목에서 방해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바보는 아닙니다. '권노갑'을 몰아냈어도 '소문'은 남게 됐으며, 열린우리당이 해체된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됐지만, 유권자들은 그 본류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 유권자들은 전반적으로 정치적 도의를 중시합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후보 경선에서 떨어졌음에도 영향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과에 승복했기 때문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한치 앞의 이득은 볼 수 있어도, 한치 앞의 손해를 감수하고 두치 앞의 이득을 보는 눈은 어두워보입니다.

 

물론,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은 '햇볕정책'과 '김대중'이라는 공동의 기반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노무현'과 '이인제'의 오랜 반목, 그리고 '금산분리 원칙'이나 '자립형 사립고 확대 유무', 그리고 '국가보안법' 등, 중요한 국가정책 앞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호남과 충청에서의 지분을 위해서 합당한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적어도 호남에서는 기존의 선거구도가 유효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린지 오래입니다.

 

'지역적 정치공학'의 계산은 이미 10년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당시에 충분히 써먹은 카드이며, '결별'로써 끝난 카드입니다. 물론, 그 당시의 'DJP 연합'만 해도 각자 정당으로서의 위치는 충분히 지키고 있었죠. 범여권은 <삼국지연의> 속에서의 '손-유 동맹'의 끝이 어땠는지를 분명히 기억해야 했습니다.

 

'유-손 동맹'의 반대자도 있었던 역사도 참고해야

 

게다가, '유-손 동맹'에는 반대자도 있었습니다. '거만덩어리' 관우는 손권을 어린애 취급하며 의형 유비의 전략적 선택을 끝장낸 것은 물론이고, 그 스스로도 죽고 말았습니다. 손권 측에서도, 장소·여몽 등이 어떻게든 관우를 죽여서라도 형주를 되찾고자 했었죠. 애초에 장소는 반유비파의 선봉으로써, 유비를 죽이려는 모략까지 세웠던 전적도 있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친노' 성향 정치인 및 유권자들, 그리고 여권 내의 '안티 정동영' 성향의 지지자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정동영 후보의 노무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이나 열린우리당 해체 등에 큰 반감을 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민주당과의 '연대'도 아닌 '합당'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정치적 소신을 문 닫아버리고 퇴행적 선택을 했으니, 가뜩이나 '정동영 후보 확정' 이후 흔들리던 이 성향의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정치 뿐만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그래요. '선택' 뒤에는 제아무리 명분을 갖췄어도 반발자나 이탈자가 나옵니다. 하지만 명분마저 부재된 상황이라면 그 움직임이 더 가시화되겠죠.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극복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어도, 그를 따르는 유권자들의 수치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과거,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과정에서 정동영·손학규·이해찬의 지지율을 합치면 25% 가량은 나왔지만, '이회창 변수'를 거친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10%나 떨어졌습니다. 이 10%를 잃은 마당에, 2%와의 '합당'을 선택했으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인 것이죠.

 

일각에서는 지역 구도에 기댄 총선 준비를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이 '합당'으로써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은 사실상 끝났습니다. '가치 연대'를 주장했던 문국현 후보로서는 '이인제'까지 같은 길을 걸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2%와의 합당', 하지만 그를 위해 잃어야 하는 것, 과연 몇%일까요?

 

한나라당에 빼앗기거나, '문국현'에게 흡수되거나

 

일본만 해도 무수히 많은 연립내각이 존재했습니다. 'DJP 연합'도 연립정권이었습니다. 굳이 단일후보를 내세운다면, 연립정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DJP연합'의 결별에서처럼 나중에 다시 갈라질 수도 있지만, 이미 다양한 당을 오락가락 창당해가며 혼선을 보인 범여권으로서는 '합당'이라는 최악의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습니다.

 

여권이 잃은 10~15%는 어떻게 움직일지 모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정동영-이인제 양 후보는 안티가 대단히 뚜렷한 후보들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결합했으니, 건져도 시원치 않을 10~15%는 급격하게 움직일 것입니다. 이미 '범한나라당'에 잠식한 현실에서 더더욱 잠식당하거나, 문국현 후보 쪽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오히려 '범한나라당'과 '문국현'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거죠.

 

게다가, '이인제'와의 결합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미를 부정당한 노무현 대통령도 어떻게 움직일지 장담할 수 없게 됐습니다. 보세요. '2%'와 '지역'을 건져내기 위해 감수해야 할 손해가 훨씬 큽니다. 이게 바로 한걸음을 위해 열걸음을 손해보는 정치입니다.

 

애초에 문국현 후보가 범여권이나 단일화에 대해 애매한 포지션을 취했던 것 이유가, 파행의 가까운 경선과정에서 이탈자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손학규·이해찬 양자를 서둘러 껴안고 나섬으로써 이 믿음은 어긋나버렸지만, 양자의 이탈보다 더 황당한 움직임으로 문국현 후보가 명분을 거머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범여권으로서는 최악의 선택입니다.

 

남은 30여 일, 글쎄요. 분명한 것은, 이회창 후보의 대선출마로 '범한나라당'의 파이는 더 커진 반면, '통합민주당 창당'은 그나마 존재하던 파이마저 이탈로써 줄어들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하고" 현실과 미래를 내다봐야 할 이유, 잘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11.12 20:1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당-민주당 합당 #문국현 #정동영 #이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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