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홍대 앞 클럽을 찾는다.
오마이뉴스 남소연
1995년 4월 5일, 펑크 바였던 홍대 앞의 드럭에서 커트코베인 사망 1주년 추모 공연이 열렸다. 드럭은 '바'에서 '클럽'으로의 첫발을 내디뎠고 홍대 앞 인디씬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흘렀다. 음악환경은 음반에서 디지털로 급격히 변화했다. 그 과정에서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축소됐다. 음반의 시대가 끝나면서 다시 공연 시장이 활황을 보이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공연시장도 축소되는 음반시장의 뒤를 쫓는다.
90년대 후반, 20여 개에 이르렀던 대학로의 콘서트 전용 극장은 지금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도 콘서트가 아닌 뮤지컬 전용 극장으로 바뀌는 추세다. 그래서 홍대 앞은 본의 아니게 인디의 심장에서 콘서트의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로에서 밀려난 주류 가수들이 고스란히 홍대 앞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서문탁, 박완규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록가수들은 물론이고, 김사랑 같은 뮤지션들도 홍대 앞에서 콘서트를 갖는다. 몇 년 전이었다면 100% 대학로에서 공연을 했을 이들이다. 또 케이블의 음악 프로그램들도 홍대 앞 대형 클럽, 또는 공연장을 빌려 공개방송을 찍는다.
무엇보다 체육관급의 공연장을 채우지 못하는 외국 아티스트들 또한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스웨이드의 리더, 브렛 앤더슨을 홍대 앞에서 볼 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아무리 한물갔다고 해도 한 시대를 호령했던 LA건스는 또 어떻고.
이렇듯 예전과 다른 수요가 있으니 공급은 필연적이다. 전문 공연장을 표방하는 공간이 최근의 홍대 앞에 하루가 다르게 등장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KT&G가 세운 상상마당, 신해철이 주축이 된 고스트 시어터가 올해 문을 열었고, 그 밖에도 2∼3곳의 대형공연장이 내년 초에 오픈할 예정이다. 홍대 앞 공연장의 변화, 또는 발전, 또는 성장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변화를 맞이하는 '홍대 앞' 공연장의 변화 이런 변화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이었다. 드럭과 잼머스, 스팽글, 마스터플랜 등 초기 인디씬을 견인했던 클럽들이 하드웨어보다는 컨텐츠, 즉 하우스 밴드의 힘으로 성장한 클럽이었다면 그 후 등장한 클럽들은 기존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널찍한 공간과 우수한 음향, 조명 환경을 내세우며 화제를 몰고 왔다.
지금은 쌤으로 이름을 바꾼 쌈지스페이스의 바람, 사운드홀릭, 롤링홀, 그리고 DGBD가 그것이다. 이 클럽들은 그리나, 신인 밴드를 발굴하는 역할에 소홀했다. 자체 기획 공연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미 다른 클럽을 통해 어느 정도 지명도를 얻은 밴드들의 차지였다.
관객의 형태도 달랐다. 그전의 클럽들이 어떤 밴드가 공연을 하던지, 그곳을 아지트로 삼아 매일 저녁을 보내는 이들의 게토였다면 2000년대 등장한 클럽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고 공연이 끝나면 술집으로 발을 옮기는, 일반적인 형태의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 초기의 클럽이 갖고 있던 공동체적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런 현상은 최근 클럽들의 대형화 추세에서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50명 이상의 관객을 모을 수 없는 신인 밴드들을 중심으로 5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 200∼300의 관객동원이 가능한 1세대 인기 밴드들이나, 아니면 방송을 통해 노출될 만큼 노출된 가수들의 공연이 이런 클럽들의 주 레퍼토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대 앞 공연장의 계층화는 이렇게 완성되어가고 있다.
초기의 홍대 앞 문화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가 '예전같지 않다'며 떠나고, 결국 '홍대 앞은 죽었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보는 모습은 2000년대 이후의 클럽 문화만을 근거로 하는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