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국악단 연습실. 한 단원이 향피리를 불고 있다.
안병기
쏜살같이 달려 호탄교를 지나 학산을 지나 영동교에 이른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 부용리 산자락에 있는 난계국악당에 들른다. 한옥과 양옥을 적당히 절충한 '퓨전식' 2층 건물인 난계국악당이 나그네를 맞는다.
이곳 영동은 우리나라 음악의 고향이다. 세종대왕 때 아악을 정리했던 난계 박연(1378~1458)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박연의 호를 따서 이름붙인 건물인 난계국악당은 개관한 지 올해로 꼭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이곳은 국악 공연은 물론 각종 문화행사를 여는 등 영동 문화의 요람으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해왔다.
국악당 왼쪽에 있는 작은 건물을 쓰고 있는 난계국악단을 찾아간다. 난계국악단은 군 단위 행정기구에선 우리나라 최초로 조직된 국악관현악단이다. 연습실을 둘러보려고 안으로 들어가니, 한 단원이 자리에 앉아서 향피리를 불고 있다.
"소리가 좋다"고 했더니 "고맙다"라고 응대한다.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늘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의 외로움을 능히 짐작하기 때문이다.
이번엔 난계국악단 좌측에 자리한 향토민속자료관으로 간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왼쪽에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발굴 현장 모형이 설치돼 있다. 1999년 9월 미국의 AP통신이 특종 보도함으로써 미군이 저지른 이 가증스러운 범죄인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비로소 청천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해골과 팔다리가 제멋대로 흩어진 풍경. 발굴 현장을 재현한 모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린다. 모형 옆에는 '말하라! 그날의 진실을'이란 정삼일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서기만 하면 죽는겨
나오기만 하면 죽는겨
삶은
죽음보다 처절했다
반세기가 흘러도 쌍굴다리가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정삼일 시 '말하라! 그날의 진실을' 일부 흔히 역사의 법정에선 시효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시효란 기억이 가진 힘을 뜻한다. 망각하는 순간 시효는 끝나고 만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은 새로이 태어나는 세대에게도 이 죄악은 전해져야 마땅하리라.
전시장 안에는 그밖에도 박연의 초상화와 전통악기와 민속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내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등잔대들이다. 등잔대가 보여주는 조형성은 소박하면서 기품 있는 아름다움이다.
난계국악당 옆 골목을 조금만 올라가면 영동 향교가 있다. 향교는 250년 전, 구교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져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제일 앞쪽에 자리한 건물이 명륜당이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제향 공간인 대성전은 굳게 닫혀 있다. 무엇을 수리하는지 한쪽에선 공사가 한창이다.
영동군 심천면 옥계리에서 태어난 난계 박연은 어려서 영동향교에서 학문적 소양을 닦았다고 한다. 당시엔 향교가 어느 곳에 있었는지 말 수 없지만.
아름답지만 사람의 기척이 들리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