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에서 평민까지' 전시관 포스터위만황궁박물관에 있는 마지막황제 부의 일생 포스터
최종명
푸이는 만주국 황제가 된 후 새롭게 귀인(贵人)을 맞이하게 된다. 귀인이란 황후(皇后), 황비(皇贵妃), 귀비(贵妃), 비(妃), 빈(嫔), 귀인(贵人), 상재(常在), 답응(答应)으로 나누어지는 청나라 황제의 부인 서열에서 여섯째 등급의 신분을 가리킨다.
1937년에 푸이는 완롱을 못마땅하게 여겨 귀족 출신의 탄위링(谭玉龄)을 귀인으로 맞는다. 탄위링은 솔직하고 순수한 성격으로 푸이의 호감을 샀다. 그러나 돌연 1942년에 병사하게 되는데 실제로 알려진 대로 장티푸스로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 관동군이 살해한 것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푸이는 자서전이며 반성문이기도 한 <내 인생의 전반부(我的全半生)>에 '가장 사랑했던 위링(我的最亲爱的玉龄)'이라 토로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일본 혈통의 여자를 푸이과 결혼시키려 했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푸이는 결국 1943년에 평민 출신의 리위친(李玉琴)을 새로운 부인으로 맞이한다. 일본 관동군이 붕괴할 때 민중 봉기군을 피해 푸이와 리위친은 함께 도망친다. 이후 전범으로 체포된 푸이가 있는 여순감옥에 찾아가기도 하고 여러 차례 서신 왕래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리위친은 푸이와 이혼의사를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