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문화재 제42호 강경북옥감리교회.
안병기
강경에서 만난 문화적인 '덤'곡창지대에 자리 잡은 소도시인 충남 강경은 금강에 접한 포구 덕택에 한때는 우리나라 굴지의 수산물 출하 항구로 떵떵거렸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강점기에는 수탈의 전진기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해방이 되자, 일제는 이 도시에 자신들의 추잡한 껍데기를 남긴 채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렸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잔재'들은 근대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대접받으며 국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흔히 강경에 가면 젓갈을 한 바가지 듬뿍 퍼주고 나서 '덤'을 준다고 하지만, 우리가 강경에 가서 받을 수 있는 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일컬어지는 문화의 '덤'이다.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이라 해서 일제가 남긴 건축물만 연상하는 것은 오산이다. 지난 10월 27일, 강경 지역 문화재를 찾아 기행 하면서 만난 문화재 가운데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미내다리도 아니요, 죽림서원도 아니다. 일제가 남기고 간 근대 문화유산은 더욱 아니다.
그날, 내가 강경에서 만났던 문화재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북옥감리교회를 비롯한 오래되고 소박한 교회 건축과 조형물이었다.
한옥교회가 가진 아름다움, 강경북옥감리교회북옥감리교회는 북옥리에 있다. 강경의 상징인 옥녀봉의 턱 아래에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다. 서울의 북촌이나 전주 교동의 한옥마을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걸 가리켜 서양말로 '데쟈뷰'라 한다든가.
도시의 한복판에서 거대한 교회만 보다가 코딱지만한 북옥감리교회를 보자, 마음 속에 평화가 저절로 깃드는 느낌이었다. 건평 36평의 작은 목조 건물. 왜 우리는 이런 작고 소박한 교회를 가질 수 없는가. 왜 이런 아름다운 교회를 버리고 자꾸만 대형화로 치닫는가.
고백하자면, 내게도 크리스마스 때 나눠주는 무지개떡을 얻어먹으려고 교회에 몇 번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굉주호 한복판쯤에 있었던 덕의리 교회였다. 잠깐이었지만, 초가집이었던 덕의리 교회에서의 '엉터리 신자 노릇'은 지금 생각하면 꽤 행복한 기억이다.
북옥감리교회 건물은 1923년 이인법 목사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회뿐 아니라 초기 기독교 건축은 대부분 한옥이었다고 한다. 자금의 문제와 함께 토착화 과정에서 오는 마찰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서양인인 신부나 목사들이 한옥으로 지어진 교회에 다소 불편함을 느꼈던 때문일까. 교회의 건축 양식은 점차 서양식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초기 한옥교회는 대부분 소멸하거나 개축 또는 신축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강경 북옥감리교회는 교회건축사적으로 봐서 희소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건물의 조형성이 장방형 평면을 취함으로써 전통적인 비례를 벗어났지만, 평면 구성과 상부 가구구조는 초창기 한옥교회의 건축방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북옥감리교회는 한옥교회가 가진 아름다움을 무엇인가를 알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