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위해 검찰이 움직이고, 국정원이 움직이고, 청와대가 움직이고, 모든 언론 기관이 움직이며 실시간 정보보고를 했다. 삼성은 돈과 힘으로 신성한 법조를 오염시켰고 이것은 명백한 범죄다. 공범으로서 나도 처벌받아야 할 순간이 됐다."
김용철 변호사는 5일 오후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열린 양심고백 기자회견에서 매우 긴장된 표정으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100여명의 취재진이 꽉 찬 회견장에서 김 변호사는 입을 떼기 직전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1차 양심고백 기자회견 이후 1주일 만에 이뤄진 2차 양심고백 기자회견에서 그간 신문과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던 내용을 포함해 몇 가지 새로운 내용을 폭로했다.
그러나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삼성의 불법 로비자금(이른바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이 공개되거나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의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폭로되지는 않았다. 다만 김 변호사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에 덧붙여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덧붙여 털어놓았다.
첫째는 현직에 있는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 삼성의 불법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삼성 사장단을 포함 핵심 보직 임원과 간부급 사원들 일부도 차명계좌를 갖고 있으며 비자금 계좌를 가진 삼성 임원명단을 일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뇌부 가운데 삼성으로부터 불법 뇌물을 받은 인물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제단은 검찰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향후 공개할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직에 있는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 삼성의 불법 뇌물을 정기적으로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이었다"며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와 국세청 등은 규모가 더욱 크다"고 말했다. 관리방법과 관련해서는 "구조본 안에서 검찰 간부 수십 명을 관리"하고 "나머지는 60여개 계열사가 나눠 관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 변호사는 삼성그룹이 마련했다는 비자금 출처와 관련해 "(삼성그룹) 각 사에서 조성한 돈"이라며 "심지어 대형 부실을 안고 있는 만성적자의 회사에서도 수십억 원씩의 비자금을 만들었으며 조성된 비자금은 임직원 명의로 차명 운용된다"고 밝혔다. 삼성 출신인사들이 재산이 많은 것은 대부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앞서 김 변호사는 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검찰(검사 40~80명에게 1년에 500만~2000만원)에 설이나 추석, 명절 때 건넨 떡값보다 국세청 인사들에게 준 것은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밝힌 바 있다.
"비자금 계좌 가진 삼성 임원명단 일부 갖고 있다"
또한 김 변호사는 "삼성의 사장단, 고위임원, 구조본의 임원, 재무, 인사 등 핵심 보직의 임원 및 간부급 사원 중 일부가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다"며 "비자금 계좌를 가진 삼성 임원들의 명단도 일부 갖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삼성 내부에서는 차명계좌의 존재가 승진의 징표이자 조직이 자신을 믿는다는 일종의 훈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김 변호사는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밝힌 것과 마찬가지로 "대선자금 수사와 에버랜드 편법 증여에 관해 모든 증거와 진술을 조작했다"며 "삼성은 돈과 힘으로 신성한 법조를 오염시켰고 이것은 명백한 범죄"라고 고백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삼성을 위해 검찰이 움직이고, 국정원이 움직이고, 청와대가 움직이고, 모든 언론기관이 움직이며 실시간 정보보고를 했다"며 "심지어 삼성에 가장 비판적인 시민단체마저 회의가 끝나자마자 회의록이 삼성에게 보내졌다"고 밝혔다.
그는 "재벌이 사법체계를, 국가 기관을,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죄를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현재까지 김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관련 비리 의혹은 ▲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한 불법 비자금 조성 ▲ 이건희 회장의 로비지시 문건 ▲ 에버랜드 재판부에 30억 로비 및 증인조작 ▲ 불법 뇌물(떡값) 받은 검사 명단 ▲ 삼성의 거액 회유 시도 ▲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전무의 재산형성 과정에서의 불법행위 등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국민적 의혹이 있는 삼성비리사건에 대해 검찰이 팔장을 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사실규명을 위한 내사에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제단은 또 "이 병폐로는 대한민국의 내일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5일 오후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을 반박하는 자료집을 배포했다. A4 총 25쪽 분량에 달하는 '김용철 변호사 주장에 대한 삼성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문건에서 삼성그룹은 김 변호사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한편, 이날 서울 제기동성당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약 100여명의 기자들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오전부터 진을 쳤다. 비좁은 회견장에서는 기자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며 김 변호사를 둘러싼 취재경쟁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기자들이 여럿 있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4시 제기동 성당을 방문했다. 문 후보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3년 전부터 반부패 범국민운동을 전개해왔다.
취재진들은 문 후보에게 '삼성 비자금'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의 반부패세력 연대 제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문 후보는 삼성 비자금 사태와 관련해 "불행한 사건이지만 국가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평했다. 또 "빨리 수사본부를 만들어서 비자금과 관련된 총수와 가신그룹은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후보의 반부패세력 연대 제안에 대해서 "오늘은 사제단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한편 문 후보는 삼성 비자금 사태에 대해 내일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