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 선미, 소희.
JYP엔터테인먼트
원더걸스의 '텔미'가 열풍을 넘었다. '텔미' 중독 증세를 호소하는 이들이 숱하다. '텔미 중독증'엔 단계도 있다.
1단계, '텔미' 노래를 자꾸 듣는다. 2단계, '텔미' 노래를 따라 부른다. 종일 흥얼거린다. 3단계, 원더걸스가 만든 '텔미' 뮤직비디오를 마스터 하고, '텔미' 댄스 UCC를 찾아본다. 4단계, '텔미' 댄스를 따라 한다. '살랑살랑' 춤을 추고, '팔찌춤'을 춘다. 5단계, '텔미'댄스 UCC를 제작한다.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 1단계는 낫다. 2단계 이르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4단계와 5단계까지 진출했다.
올 가을 고등학교와 대학 축제 최고 스타는 원더걸스였다. 정확히는 원더걸스의 '텔미'였다. 지난 9월 교통사고가 난 것도 원더걸스가 지방 대학축제를 뛰고 올라오다 일어난 일이었다. 미처 원더걸스를 초대하지 못한 학교에도 '텔미' 열풍은 덮쳤다.
꿩대신 닭, 학교마다 '짝퉁' 원더걸스가 축제 무대를 빛냈다. 남학생들은 긴 머리 가발에 짧은 미니스커트, 원더걸스 스타일 여장도 서슴지 않았다. 무대에 서서 '텔미' 댄스를 췄다.
학교만이 아니었다. 유행의 외곽지대인 군대도 '텔미' 열풍에선 예외가 아니다. 원더걸스가 군부대에서 공연했다. 또 군인 버전 '텔미' 댄스 UCC도 등장했다.
특별히 섹시하지도 않고 특별히 대단한 미모도 아닌데다가 특별히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 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대한민국이 홀딱 빠진 이유가 뭘까? 가요계를 떠났다는 30·40대마저 아이돌 가수에 열광케 만든 이유는 뭘까?
원더걸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롤리타? 대중음악 평론가인 김작가씨는 "2003년 문근영으로 증명됐듯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코드가 '롤리타 코드'"라며 "원더걸스는 가요계 최초로 롤리타 코드가 이식된 경우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원더걸스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멤버는 안소희다. 안소희는 별명이 '만두'. 통통한 볼 때문이다. 팬들도 인정하듯이 솔직히 소희는 특출난 미모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귀엽다. 팬들도 "뭐라 탁 꼬집을 순 없지만, 너무 귀엽다"며 열광한다.
김작가씨는 "'텔미' 하면 떠오르는 게, "어마나" 하며 소희가 뺨 가리는 것"이라며 그것이 원더걸스 이미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다른 아이돌 스타와 달리 10대 남자들뿐만 아니라 30대 40대 아저씨들까지 원더걸스에 열광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여성 아이돌은 하나 같이 섹시 콘셉트를 표방했다. 대표적인 게 이효리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섹시 콘셉트가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원더걸스가 '롤리타 코드'를 들고 나와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귀여운 매력이 폭발한 게 '텔미'다. 이제 20대가 돼버린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빈 자리를 소희가 채운 걸까?
단순하게 스며드는 '텔미' 중독물론 그뿐이 아니다. 원더걸스는 사실 싱글 '아이러니'로 데뷔했다. 하지만 지금 '텔미'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텔미'는 왜 유독 인기가 많을까? 이젠 아이돌 스타 이름도 못 외우는 30·40대를 '텔미'는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김작가씨는 그 이유로 "중독성 있는 멜로디 라인과 넓은 층에 어필하는 복고적 사운드의 결합"을 들었다.
'텔미'는 최근 신인 가수들이 숱하게 들고 나오는 노래들과 사뭇 다르다. 일단 노래가 쉽다. 멜로디가 단순하다. 랩도 별로 없고, '꺾기'도 없다. 웬만한 '노래치'도 듣고 따라하기 쉬울 정도다. 거기다 "텔 미 텔 미 테테테테테 텔미" 후렴구가 수차례 반복한다. 반복은 세뇌를 낳는다. 가사도 단순하다. 거기다 신난다. 들으면 신나고, 따라하면 더 신난다. 소희라도 된 양 "어머나" 하며 뺨에 살짝 손을 대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작가씨는 "요즘 음악들이 대중들한테 익숙지 않은 흑인 팝 음악 사운드를 차용해서 억지로 가요로 만든 바람에 설득력이 없었는데, 빅뱅의 '거짓말'이나 원더걸스의 '텔미'는 80년대 사운드에 기반했기에 당연히 친숙하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은 의미심장하다. 가요가 '그들만의 리그' 같다 느끼며 가요를 외면하던 이들에게 '우리 같이 리그'할 노래가 나온 셈이랄까?
최근 콘서트 무대에선 노래 따라 부르는 관객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소수 10대 열혈팬만 따라했다. 하지만 빅뱅의 '거짓말'과 원더걸스의 '텔미' 콘서트장은 사뭇 다르다. 원더걸스 콘서트장에선 관객들 노래 소리에 원더걸스의 노래가 묻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군부대에 원더걸스가 공연을 갔을 때도 진풍경이 연출됐다. 다른 가수 공연엔 그저 넋놓고 바라보던 군인들이 원더걸스 '텔미' 공연에선 달랐다. 노래를 따라불렀다. 군인들의 합창 에 원더걸스가 부르는 '텔미'는 들리지 않았다. 80년대 90년대 초반에나 보던 풍경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원더걸스, 데뷔 전에 데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