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내곡동 국정원에서 열린 '국정원 진실위 3년간 활동결과에 대한 설명회'에서 참석 위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만복 국정원장은 발간사에서 "국정원이 잊혀져가는 의혹사건을 새롭게 규명하려는 노력은 결코 면죄부를 부여받거나 단순히 용서를 구하려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는 국민들이 공권력으로 아픔을 겪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밝혔다.
실제 대한민국 역사상 민간이 정보기관에 들어가 잘못된 과거사건을 조사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박용일 변호사(민간위원)의 말이다.
"역사상 유례없이 정보기관에 민간조사관들이 들어가 조사를 해내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국정원이 큰 틀에서 과거청산 의지는 강했지만 구체적인 사건과 조사에서 들어가면 바로 벽에 부딪치는 어려움도 솔직히 있었다."
박 변호사는 "개별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활동을 위해 때로 위원간 난상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 면담, 김형욱사건 처리결과에서는 사건의 핵심에서 상당히 많이 부딪쳤다"고 술회했다. 이어지는 박용일 변호사의 말이다.
"심지어 제출된 수사기록을 보면 수사 관계자 이름이 다 빠진 적도 있었다. 담당 수사관들이 현재도 근무 중일 테고, 또 퇴직해도 누가 했는지 다 알 텐데도 진실위에 건네는 자료에는 이름이 누락된 경우가 많았다. 항의도 많이 했다. 막판에는 국정원의 의지를 믿을 수 없다며 김현희 조사는 우리가 직접 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인권보장' 때문에 소재지를 밝힐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기도 했다."손호철 서강대 교수도 "혁명적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내부의 자발적인 방법으로 과거청산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평가했지만, 반대로 "정보기관이 갖고 있는 폐쇄성과 관련법의 한계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고 결렬의 고비도 많이 넘겼다"고 전했다.
한홍구 "차라리 엎어버리고 나가자는 생각도"그 정도로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역사상 '왜곡된 간첩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아마 한국 역사상 처음 시도된 일이었을 것이다. 간첩과 사법 편을 직접 집필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간첩과 사법 편은 아마 과거 중정, 안기부, 국정원으로서는 차마 인정하기 어려운, 내놓기 어려운 부분이 보고서에 다 들어 있다. 정말 답답할 때는 '엎어버리고 나가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국정원측도 과거청산 의지가 강해 함께 밀고 나갔다."한홍구 교수는 이번 활동을 정리하면서 "국정원 전 직원으로부터 반성을 끌어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한계였다고 생각한다"며 "이 한계는 국방부나 경찰청 등 다른 위원회가 맞닥트리고 있는 문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보고서 발간이 당사자 고백이 아니라 해도 기관 차원에서의 고백이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며 "진정한 과거청산 작업이 되려면 과거 사건의 관련 종사자들이 지금이라도 고백을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한 교수는 "아마도 법적 절차에 따라 피해자들의 재심이 청구될 것"이라며 "사법적 재심 과정에서 과거사건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소환되는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3년 전, 국정원 진실위가 출범할 때 오충일 전 위원장은 '진실고백과 화해'를 강조했다. 누가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게 아니라 진실로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양심고백하고 화해에 이르는 길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3년간 활동이 진행되는 동안 과거 잘못된 고문과 가혹행위에 대해 반성하거나 양심고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과거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빌지 않는데, 화해가 가능한가.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데, 다가가 화해하자고 손 내밀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한홍구 교수의 '우리는 화해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말은 심장을 친다.
화해를 전제한 과거청산이었다면 분명 실패한 과거청산이다. 그러나, 피해자의 관점에서 잘못된 과거사건의 재심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진실한 양심고백이 이어진다면 화해가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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