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운하 정책검증단 참가자들이 '사기 그릇'을 깨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병기
어느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의 남산을 파내고 그 자리에 주택단지를 만드는 가칭 '남산프로젝트' 공약을 제안하였다고 가정하자. 우리가 이러한 계획을 검토할 때에 기준은 무엇이고, 이러한 기준들 사이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기술적인 가능성이다. 남산을 파내는 공사는 조선시대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태백산맥에 터널을 뚫고, 새만금 방조제를 막는 토목기술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땅파는 공사에 특별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두 번째 기준은 경제성이다. 이 경우에는 남산을 파낸 자리에 어떠한 주택을 건설하느냐에 따라 경제성 분석은 달라질 수 있다.
그 자리에 200평 크기의 단독주택만을 짓는다면 아마도 경제성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싸라기 땅값인 남산 자리에 20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한다면? 여전히 경제성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40층 아파트를 짓는다면? 그래도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 비율이 1을 넘지 못한다면, 아파트 층수를 100층으로 높이면 될 것이다.
남산 파내는 공사에 든 비용과 100층 아파트를 지어 분양해서 얻는 수입을 비교하면 아마도 경제성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공사기간 동안에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도 있을 것이고 남산이 없어지면 시내 교통은 더 편리해질 것이며, 이러한 요소는 모두 편익으로 계산될 것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남산프로젝트에 찬성하겠는가? 대부분의 독자는 반대할 것으로 생각된다. 반대하는 이유는? 남산은 경제성 분석에서 포함하지 못하는 여러가지 중요한 가치가 있다. 남산의 소나무가 보여주는 의연함은 애국가 2절에서 칭찬하고 있다.
남산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경관적인 가치, 남산의 봉수대가 지닌 역사적인 가치,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 보는 조망 가치, 녹지공원으로서의 가치, 대기오염물질을 흡수하여 도시의 허파 구실을 하는 가치 등이 모두 남산이 지닌 가치이다.
남산을 파낸다면, 찬성하시겠습니까?이러한 모든 가치를 환경가치, 또는 환경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산프로젝트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계획할 때에 우리는 경제성 외에 환경성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여 평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발사업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서 잘 살기 위해 추진하자고 하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이른바 개발만능시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경부고속도로(1968~1970)를 건설할 당시에는 사업의 경제성이 논란의 대상이었지 환경성이라는 기준 자체가 없었다.
1981년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되어 환경법 상으로는 환경성이 사업평가의 중요한 기준으로 명시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개발사업의 면죄부 정도로 인식되었고 실제로 환경성 때문에 개발사업을 취소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새만금 사업으로서 1987년 새만금사업을 노태우 후보가 정치공약으로 내걸었고, 대통령이 되었다.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는 1989년에 환경영향평가를 하기는 했지만 매우 형식적이었고 1991년에 방조제 공사가 착공되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그 당시 국민의 전반적인 의식이 환경보전보다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고, 따라서 환경성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경제가 점점 발전하면서 환경보전에 대한 의식이 점점 높아지고 환경성은 점점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시화호 오염 사건은 이미 건설이 끝난 시화 방조제(1987~1994)를 1997년에 일부를 허물고 해수를 유통시켜 시화호의 수질을 개선시킨 사례로서, 국민들은 수질개선이 간척지 개발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공감하였다고 볼 수 있다.
새만금방조제 건설사업(1991~2006)이 느리게 진행되던 중에, 1999년 방조제 건설을 중단하고 민관공동조사를 통하여 환경성과 경제성 등을 다시 검토하게 된 사건도 국민의 높아진 환경의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의 경제성과 환경성에 대한 최종 판단은 엉뚱하게도 전문가가 아닌 법원에 의해 내려졌다. 전문가 집단으로서는 부끄러운 사례였다.
수도권의 홍수조절과 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추진하려던 동강댐은 계획단계에서부터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되었다. 동강댐 계획은 경제성은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환경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심각하다는 이유로 2000년에 정부가 취소를 결정하고 동강유역의 아름다운 생태계는 보전될 수 있었다. 동강댐 계획은 환경성이 경제성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 취소된 최초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터널 공사와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공사는 환경성 검토가 미흡했다는 이유로 불교계에서 주도하여 건설을 중단시켰으나, 나중에 법원의 최종 판결로 공사를 재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경우에는 국민 여론이 환경성보다는 경제성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공사가 재개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규모 공사가 환경성 검토의 미흡으로 인하여 착공된 이후에 공사가 중단되는 부작용을 낳게 되자 정부에서는 2006년 6월부터 전략환경평가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다. 전략환경평가 제도는 개발사업이나 중요한 행정계획에 대해서 계획단계에서부터 환경성을 기준으로 삼아 검토하자는 제도로서 나중에 불거지는 환경성 시비 때문에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낭비를 미리 막아보자는 매우 바람직한 제도이다.
경부운하, 대통령 임기 내에 지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