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화성행차> 겉그림
효형출판
책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는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화성성역의궤>의 내용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쓴 책이다. 역사책은 학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신념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책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정조대왕의 정책과 화성 건설 및 화성 행행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분석했다. 다음으로는 1795년의 장엄한 화성 행차를 그림으로 담은 채색반차도 전체를 63쪽에 걸쳐 소개하고, 여기에 국문과 영문으로 해설을 달아놓았다. 마지막으로 1795년의 화성 행행, 그 8일간의 기록을 담고 있다.
1795년의 화성 행행은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문무과 별시를 여는가 하면 정조대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야간 훈련도 있었다. 가난한 이들에게 쌀을 나눠준다든지 어르신들을 위해 양로연을 베푸는 것과 같은, 백성들과 함께 하는 행사도 있었다. 이 수많은 행사들은 장헌세자와 혜경궁 홍씨에 대한 정조대왕의 지극한 사람과 효심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조대왕이 백성들과 함께 하는 세상, 곧 민국을 꿈꾸고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795년 화성 행행은 18C까지 축적된 조선의 문화역량의 총체가 발휘된 행사였다. 이를 통해 조선왕조의 문화역량이 얼마나 뛰어났는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궁중음식, 궁중무용, 우리의 언어 등 무수한 역사적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반나절치 임금까지 꼼꼼하게 계산해주고, 공역에 들어가는 못 하나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며, 한 끼 식사에 올라가는 음식의 재료 하나까지 일일이 남긴 것을 보며 저절로 숙연해진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인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물론 정파간 싸움도 있었고, 궁중에서의 암투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다소 낮은 대접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부풀려 마치 전체인 것처럼 왜곡시킨 이가 바로 일제였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결코 정체되거나 약해빠진 나라가 아니었다. 자유분방하며 역동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던 선비의 나라였다. 1795년 화성 행행은 그 모습을 정확히 가르쳐주고 있다. 이 행사의 요지를 담은 8폭에 달하는, 이른바 '수원능행도 병풍'은 조선의 화인들의 무서운 역량과 함께 이 행사가 백성과 함께 하는 행사였으며, 자유분방함이 묻어나는 장엄한 행사였음을 잘 보여준다.
청계천 거닐며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을 생각하다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청계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2005년 복원된 청계천에 화성 행행의 반차도를 200m에 가까운 도자벽화로 만들어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0월말 약간 시린 바람을 맞아가며 찾은 청계천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를 만끽하는 시민들이 참 행복해보였다.
그러나 마냥 행복함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반차도 벽화는 청계천의 아름다움을 대표하지만, 이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리 만족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신문에서는 이 벽화를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벽화’라 소개했다. 이것이 맞는가? 틀리다.
정조대왕은 장헌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을 찾았다. 능(陵)은 왕이나 왕후의 무덤을 말한다. 원(園)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후궁의 무덤을 말한다. 그러므로 능행(陵幸)이 아니라 원행(園幸)이다. ‘원행 반차도’라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니면 화성으로 행행을 한 것이므로 ‘화성 행행 반차도’라 해야 한다. 신문에서조차 잘못된 사실을 전하는데, 일반 시민들이 반차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할리 만무하다.
당시 청계천을 거닐며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무서운 역량을 지니고 있는 강국이었다. 믿음의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던 수많은 이들이 이끌고 간 나라였다. 왕조라는 사회, 신분이 있었다는 한계를 벗어던질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뛰어넘기 위한 숱한 노력을 우리 조상들은 해왔다.
19C 초반 수만 명의 공노비가 해방될 만큼 우리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생각과 의식, 행동이 열려 있었던 나라였다. 우리는 지난 20C 우리의 전통문화를 버리고 외국의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 좋은 것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것도 많았다. 그것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는 지금 우리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18C 조선 모습 통해 21C 대한민국 미래 그려보자21C가 시작된 지 벌써 7년이다. 과학기술이 최첨단을 향해 달리고 있고, 국민들의 민주화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우리는 과연 엄청난 전통문화의 역량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역사의식, 문화의식의 현주소는 어디쯤 될까? 왜 우리는 개발과 경제성장의 상징처럼 여겼던 메워졌던 청계천을 그 옛날의 모습으로 다시 돌려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복원이 이루어지고 관람이 이루어지던 첫날 58만 명, 이튿날 42만 명, 도합 100만 명 발디딜 틈 없이 청계천의 아름다움을 맛봐야 할 만큼 우리는 그렇게 여유와 낙이 없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아름다움을 맛보면서도 정작 청계천이 지니는 의미와 청계천에 그려진 반차도 벽화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구현해낸 18C 조선문화의 역량을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무수한 의문이 나의 머릿속에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그 숙제에 대한 일말의 해답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 역사는 300년을 주기로 르네상스를 경험했다. 15C 세종의 시대, 18C 정조의 시대가 조상의 몫이었다면, 21C의 르네상스는 바로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니겠는가.
정조의 화성행차 - 로 따라가는
한영우 지음,
효형출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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