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스 호텔 에펠탑. 실제 크기의 3분의 1인 에펠탑 앞으로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문종성
"라스베가스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가? 오늘밤 당신이 기대하는 상상 이상의 현실로 당신의 유희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양립할 수 없는 도박과 섹스의 기치를 내걸고 쾌락질주를 모토로 숱한 영혼들의 감각적 방황을 이끌어내는 네바다 주의 성지(姓地) 라스베가스. 전문 딜러의 화려한 손놀림을 번개같은 눈썰미로 간파해 도박으로 대박의 꿈을 이룬 후 멋진 금발의 미녀에게 로맨틱 프로포즈를. 이것이 오늘 나의 하루 계획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계획을 1분 만에 접었다.
단언하건대 내 계획이 멋지게 이루어질 확률이 나사·철판·볼트 따위를 하늘에서 떨어뜨렸을 때 땅에 순서대로 착착 떨어져서 비행기가 조립될 확률보다 더 낮다. 이유는 간단하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소위 짤짤이로 도박계에 화려하게 입문, 다다음해 졸업여행 때까지 학교 행사때마다 돈놀이를 일삼다 푼돈을 건 비생산적 부가가치창출에 기인한 심각한 범법행위에 회의를 느껴 도박과의 연을 끊은 까닭이다.
이후 딱 한번 전(前) 모 대통령이 꿈에 나타나자 이를 길몽이라 여겨 관심도 두지 않던 로또복권을 구입한 적이 있더랬다. 하지만 말짱 도루묵이 된 이후로는 한탕주의로 물든 도박은 내 인생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라면 나에게 혹시 잠자고 있는 도신의 피가 흐르지는 않나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연 3300만 명 이상의 외래 관광객이 유흥의 땅에서 도신 적성 테스트를 받은 덕택에 2005년도 라스베가스 스트립 지역 카지노 호텔들의 총 매출액도 무려 U$60억을 기록했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아시아의 맹주 마카오에 도박산업에 관한 여러 수치들을 추월당해 왕좌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도박=라스베가스' 공식에 대한 아성은 견고하기만 하다.
혹시, 내 몸에도 도신의 피가?그리고 이 도시는 무엇보다 제사도 잘 치르지만 때론 잿밥에 눈을 돌리는 외로운 승냥이들도 심심치 않게 존재한다.
도박에는 안중에도 없는 혼자 온 남정네들의 십중팔구는 도박보다 남 눈치보지 않는 핫 걸(Hot girl)과의 뜨거운 하룻밤을 더 원한다. 이곳은 법적으로 성매매가 허용된 미국 내 유일한 주(州)이기 때문이다.
황색 저널리즘의 구차한 광고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대가를 치르고 하룻밤 상대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니 이만큼 인간의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또 어디 있는 건지. 화려한 조명들이 마치 악마의 홀림같아 썩소(썩은 미소) 한 번 날려준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카지노의 세계를 구경하고 싶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친 카이사르의 비장한 결단을 느껴보기 위해 주사위 도박장으로 향해 볼까 아님 주윤발·유덕화·주성치로 이어진 도박 영화의 르네상스를 지켜본 골수 홍콩 영화팬으로서 포커게임에 공을 들여볼까?
머리 굴리기 싫고 몸도 움직이기 싫은데 그냥 룰렛으로 눈길을 돌린 후 마지막엔 슬롯 머신으로? 그래도 왔으니 기념으로 한번쯤은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아무래도 도박은 나와 상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구경만 하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카지노 호텔 여기저기에는 뜻하지 않은 잭팟으로 온갖 조명과 짤랑짤랑 돈벼락 떨어지는 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사람들의 기쁨에 겨운 얼굴이 광고되고 있다. 하지만 그 뒤로 가산을 탕진하고 가정이 깨지고 집착을 넘어선 중독에 이르는 심각한 사회문제는 모두 가려져 있으니 이 얼마나 몽매주의자들을 끌어들이는 그럴듯한 착각의 늪인가.
성매매가 합법인 동네, 나만 피해간 '찌라시'